31. 상대가 누구든 류이치는 변함없다
그것은 방과 후의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류이치는 시즈나와 함께 교실을 나가려던 그때,
예전의 소헤이처럼 끈질기게 시선을 보내온 아키라가, 오늘에서야 접촉해 왔다.
왠지 모르게 눈치채고 있었던 류이치에게, 특별히 놀라움은 없었다
「시시도, 너와 얘기를 하고 싶다」
「……뭐, 상관없지」
그렇게 말하고, 시즈나에게 눈을 돌렸다.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먼저 돌아가도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설령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시즈나는 그것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물론, 기다릴거야」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류이치와 함께 돌아갈 것이라고, 시즈나는 말한다
졌다며 쓴웃음을 짓는 류이치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의 아키라
「..... 린도, 진짜 어떻게된거야. 이참에 물어보겠는데, 소헤이를 보고 아무 생각도 안드는거야 ?」
「생각하냐 안하냐, 그 두 가지 선택이라면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저기,시라사기군.
너는 나와 소헤이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 ?」
「….. 아니, 듣지는 않았지만 예상은 할 수 있다. 소꿉친구잖아 ? 어째서 소헤이가 아닌 그놈 옆에 있는거야」
시즈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시즈나의 눈빛에 두려웠는지, 아키라는 한발 물러섰다
화를 내는 시즈나를 보고, 류이치 또 이 패턴인가 하고 한숨을 내쉰다.
시즈나처럼 화난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들으면 우울하다고 생각해 버린다.
「시즈나」
학교 복도, 금방이라도 아키라에게 호통칠 기세인 시즈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시즈나가 화를 내거나, 언짢은 표정일때, 그녀의 몸에 접촉하는것이 가장 좋은 안정제다.
「...... 류이치군」
「이깟 일 ......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일이 화낼 필요는 없어.
나와 너의 관계는 타인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넌 내 옆에서 웃어주면 돼」
그렇게 말하고, 류이치는 시즈나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걷기 시작했다.
「냉큼 끝내자고, 시라사기」
이참에 시즈나가 동석해도 불평하지 않을거라 생각했고, 류이치의 생각대로, 아키라는 별말 하지 않았다.
향한 곳은 인기 없는 옥상이었다.
「그래서 ? 하고싶은 말은 ?」
류이치와 시즈나의 시선을 받으면서, 아키라는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 시시도는 누나를 알고있나?」
있어도 낮은 확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키라가 듣고 싶은 것은, 사츠키에 관한 일 같다.
류이치와 사츠키가 육체관계를 가진 것까지는 모를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구태여 사츠키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사츠키?네놈의 누나인건 몰랐지만, 알고있다고?」
「어 ..... 어디서 만난거냐」
아키라의 어투가 강해진 것을 보고 류이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류이치는 많은 인간을 봐 왔다.
시즈나, 치사, 사키에나 사츠키처럼 호의를 베풀어 주는 인간,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인간.....그리고, 추악한 욕망을 들키지 않는다 생각하면서 드러내고 있는 인간.
(이 녀석 혹시 사츠키를 ? 피가 이어진 가족이다만 ........하, 정말 업이 깊은 세계구만, 여기는)
특별히 경멸하지도 않고, 류이치는 이상하게 납득했다.
류이치처럼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갖는 사람도 있고, 그런 류이치에게 끌리는 여성들도 있다.
그리고 아키라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어디서 만났냐니、너와 관계 없는 일이다」
「당연히 관계있잖아!?」
아키라는 버럭 소리질렀다.
노려보는 아키라의 모습에서, 얼마나 강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힐끗 옆을 보니, 시즈나도 흥미로운 듯 아키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키라가 덤벼들 가능성을 고려하여, 시즈나를 지킬 수 있도록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 혹시 ――」
핵심을 찌르는 말을, 류이치가 하려던 그때였다.
그의 뇌 속을 가득 메우는 흑백 그림이 떠올랐다.
마치 만화책을 보는 듯한 감각에, 류이치를 빠져들게 한다.
『저기 누나, 왜 소헤이를 신경쓰는거야, 내가 있잖아!?』
『그만둬 아키라 .... 부탁이야,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그만둘리가 없잖아 ..... 누나는 내꺼야,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아!!』
드디어 신경쓰이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키라가 친누나인 사츠키를 사랑하고 있는 것,
소헤이를 챙겨주는 사츠키를 보고, 질투심과 욕망이 폭발하여, 그녀를 겁탈한것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사츠키는 소헤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동생의 친구라는 이유로 챙겨줬을 뿐인데, 아키라가 멋대로 폭주한 것이다.
「……정말, 업이 깊은 세계구만」
만화 원작자의 취미인지, 성벽인지, 원래 그런 흐름으로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시즈나를 빼앗기고 절망한 소헤이를, 사츠키가 자신의 몸을 사용해, 기운차리게 해주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같은 느낌이라서, 이러한 소재의 세계속 주인공은, 어지간히도 구원받기 힘든 것 같다.
「류이치군 괜찮아 ?」
「아, 괜찮아」
그렇다고는 해도, 본질은 바뀌었지만 류이치가 소헤이로부터, 시즈나를 빼앗은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 비록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류이치와 시즈나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만화와는 다르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
그리고 지금, 간접적으로 아키라는 폭주하고 있다.
원래는 소헤이에게 향했을 질투가, 류이치에게 향해 있다.
만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훨씬 강한 질투인 것은, 상대가 류이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됐으니까, 누나랑 ...... 내 소중한 것과 어디서 만났냐고!?」
참지 못하고 아키라가 따지고 들었다.
머리에 피가 쏠렸는지, 숨기지도 않고, 사츠키에 대한 인식이 겉으로 드러났다.
호의라고 믿고 있는 그것은 사실, 피가 이어진 친누나를 자신만의 물건으로 삼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건마냥 말하는군. 과거의 나도 똑같이 생각 했었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직관해보니, 얼마나 끔찍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류이치도 예전에는 이랬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시즈나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뤘을지도 모른다.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시점에서, 비슷한 부분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류이치는, 그녀들을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류이치는 대등한 상대로서 그녀들을 접하고있다.
「후후, 류이치군에게 물건취급 받으면, 그건 그거대로 흥분되겠네」
「야」
류이치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시즈나가 그렇게 말했다.
팽팽한 공기를 정면으로 가르는 시즈나의 말에, 류이치는 역시 너는 마조라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난 역시 정면에서 마주보고 사랑하는 게 좋아.그래서 나는 지금의 류이치군을 좋아하게 된거야.
퉁명스러운 부분은 변하지 않았지만, 상냥한 점은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어. 그래서 난 널 사랑해.」
미소 띤 시즈나에게 류이치도 그런가 하고 웃었다.
완전히 방치된 아키라지만, 류이치는 새삼 그에게 눈을 돌렸다.
「저기,시라사기. 사츠키는 물건이 아니다」
「뭐라고!?」
애초에 부정할 부분이 틀려먹었다.
사츠키는 물건이 아니라는 말에 수긍했어야 했다.
아키라의 반응은, 사츠키가 물건이라는 것에 긍정한 것이다.
사츠키와 관계를 가진 것도 있고, 무엇보다 아키라가 감정을 드러낸 계기를 류이치가 제공한 이상
모른척 할 생각은 없었다
「네가 왜 사츠키에게 그런 비뚤어진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뭐 연애란 것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니까 부정하지는 않아.
하지만, 저 녀석을 물건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점에서 좋은 일이 되지는 않아」
뭐 그래도, 쾌락을 주고 왜곡된 행복을 심어줄 수 있으니, 만화 속 세계는 편리한 것이다.
류이치의 말에 아키라는 눈을 치켜들고 노려본다.
곧바로 덤벼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상대가 류이치라서 그런지 행동은 없었다.
「……뭐, 내가 말해봤자겠지만. 사츠키를 도와주고, 사츠키와 ……이건 됐나」
「그래, 나는 너같은놈하고 다르다고!나는……나는……젠장!!」
아키라는 뛰어서 옥상에서 나갔다.
류이치도 시즈나도 그를 막지 않았다
류이치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츠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은 그녀가 묵으러 왔을 때, 연락처를 교환해두었다.
「……받으려 ――」
『여보세요, 류이치군 ♪』
「......」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기쁨으로 가득찬 예쁜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전해져, 뺨이 느슨해진다.
그녀에게 전화를 한 것은 이유가 있다.
「저기 사츠키, 일단 사과 해야할 일이 있다」
어찌 보면, 방금전의 대화가 아키라를 부추긴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류이치와의 대화가 없었어도, 빠르냐 늦냐 차이일뿐, 조만간 행동에 나섰을 것이라 예상된다.
아키라에게 미안하지만, 방금전의 대화 내용을 전부 사츠키에게 전했다
『……그렇군요. 아키라가 저를』
「미안하군, 내가 부추겨버렸다. 평소 집에는 부모님이 계시나 ?」
『부모님 둘중 한분은 꼭 계시죠. 후훗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당연하잖아」
덧붙여서, 목소리가 새고 있기 때문에, 대화 내용은 시즈나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시즈나는 입가에 손을 얹고 쿡쿡 웃었다.
「그렇게 곧바로,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이 멋진건데 ……이게 무자각해서 난감하네.
내 친구가 좋아하는 만화의 둔감 주인공 같아」
둔감은 불필요하다며 시즈나의 이마에 딱밤을 했다.
「앙 ♪」
'딱' 기분 좋은 소리와 동시에 시즈나의 야한 목소리가 새어나왔고
그걸 들은 사츠키가 부럽다고 중얼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