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화
겨울이 온다。
예감은 피부를 찌르는 찬바람이 가르쳐줬다。
가을은 알 수 있는게 없었다。
약간의 단풍이 생기나 싶더니、산들의 진녹색은 일제히 낙엽화 했고、
그 낙엽은 일대에 융단처럼 깔렸다。
온통 갈색인 경치에 발디딜 틈은 없고、한걸음 내딛으면 싫든 좋든 마른소리가 난다。
아무생각 없이 다리를 치켜들며、낙엽을 흩뿌린다。
너풀너풀 춤추듯 낙하하는 낙엽。그것과는 다르게、부드러운 둥근 잎은 곧바로 툭 떨어진다。
순간、시야를 가득메운 낙엽의 커튼은、몇 초도 안걸리고 전부 지면에 돌아갔다。
그 장면을 보고、문득 떠올린다。
눈깜빡할 사이에만 공중에 머무는 이 잎사귀들을、검으로 베는 수행을。
순발력이나 공간지각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해볼 가치는 있을거다。
다시한번 다리를 치켜들며 낙엽을 춤추게 한다。
검을 뽑고、눈앞의 모든 것을 벤다。그런 마음가짐으로 뒤돌아보며 베려고 하니、이미 낙엽은 지면에 떨어져 있었다。
「우으……」
자신의 움직임을 되돌아볼 필요도 없이、원인은 명확했다。
휘두르는게 늦다。그것뿐이다。
이 속도로는 몇 십이나 되는 잎을 전부 베는건 도저히 불가능。
더불어、불규칙하게 흩날리는 잎을 베기위해 움직임을 예측하느라、콤마에 미치지 않는 지연이 발생한다。
유예가 몇 초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그것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생각보다 어렵다。
해내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하지만 어머니라면 해낼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노력만이 있을 뿐。
다시한번 다리를 치켜든다。
집중한다。어느 수업의 성과인지、최근에 극한까지 집중하면 시간의 흐름이 완만해지게 되었다。
수행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다。기쁘지만、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성과였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에 평등하게 작용한다。공중의 잎이 정지해 있다면、자신 또한 정지한다。
예외는 없다。
의식은 이미 잎을 벴다。하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발도중이다。
의식만 앞서가고 몸이 그에 따라가지 못한다。너무 답답하다。기다려를 명령받은 개가 이런 기분이겠지。
주관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검속은 항상 최고를 유지했다。시야에 머무는 모든 잎을 파악하고、검은 최속을 치닫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눈 앞의 일은 괜찮다。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하지만 사각은 별 수 없다。
뒤돌아보지 않으면 모른다。하지만 눈으로 보고 뇌로 처리하는 시간이 아깝다。
그런 것을 하는동안 잎은 천천히 지면에 빨려들어간다。
체념하지 못하고 지면에 떨어지기 직전의 잎을 한 장 베었지만、떨어지고나서 벤건지 아니면 직전에 벤건지、
뭐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느리다。너무나도 느리다。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두르려면 어찌 해야할까。
신체능력은 하루아침에 어떻게 되는것이 아니다。꾸준한 단련을 쌓는 수밖에 없다는건 알고있다。
하지만、아무리 단련해도 언젠가 한계는 찾아온다。
이 세계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오겠지。
신체능력의 차이를 뒤집으려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머니의 가르침에는 어긋나지만、힘이 아닌 완전히 다른 무기를 연마할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조건반사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움직일 수 있다면、뇌를 경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빠르게 움직이는 것만을 생각한다면、그것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을 수반한다。갑자기 눈앞에 인간이 나타나면、단칼에 베어버리는 미래가 역력하다。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사고를 포기하면、돌이킬 수 없는 미스를 범할 수도 있다。
만회하기 위한 대책을 세울 수도 없다。
자신의 안에서 스위치를 넣고있는 동안만 몸이 움직일 수 있게 한다든가、그런건 안되는걸까。
발상이 최면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힘이 없는걸 커버하려면、나에게는 지식밖에 없다。지혜와 궁리로 보충하는 수밖에 없다。
할 수 없는걸 할 수 있게 하려면、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고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검을 휘두른 것보다도、최근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명상이라 부를만큼 고상한 것은 아니다。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으니까。
이 너머의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제자리걸음하고 있다。
손으로 더듬으며 조심조심、하품이 나올정도로 지지부진한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오가 부족한 걸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한번、크게 내딛어야 하는걸까。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한 걸음 내딛으면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후회에 시달려도、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걸 알고있으니、신중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나쁜 일은 아닐거다。
하지만 노리는게 있다면、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고싶은 목표가 있다면、때로는 신중함을 버리고、
지금이 그 순간인걸까。
일심불란하게 멧돼지처럼、그저 이루고싶은 것만을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한구석에、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그 길을 선택해버리면 끝、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여동생과의 관계도。모든게 전부。
망설여진다。아늑한 현재를 부수고싶지 않아서。이 10년간 쌓아올린걸 부수고싶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한다면、자신의 마음에 뚜껑을 덮고 평온한 일생을 걷는다。그런 인생도 있겠지。
헤맨다。헤매고만다。
무엇을 하고싶은가。무엇을 지키고 싶은가。무엇을 우선시 해야하는가。
헤매고 헤매다가、결국 대답을 미루고 있다。
아직 10살。시간은 있다。미루는게 뭐가 나빠。
뻔뻔하게 태도를 바꿔봤지만、생각하는 머리는 멈춰주지 않는다。
아직 시간은 있다。다음이 있다。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기분으로는 아무리 지나도 결정할 수 없다。알고있다。이건 나의 연약함이다。
그렇지만、아무리 마음을 졸여도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짧게 숨을 내쉰다。머리를 너무 써서 두통이 찾아왔다。기분전환을 하자。
주변을 둘러본다。눈에 비치는건 낙엽 뿐。
마른 잎이라하면、떠오르는건 한가지 뿐이다。
불을 피우자。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생각하자。
불은 신비로운 감상에 빠지게 해준다。그걸로 뭔가 얻는게 있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는 눈이 내린다。
적설량은 무릎 정도。
전생을 떠올리면、이정도는 많이온 것도 아니지만、
자동차가 없는 이 세계에서 그만큼 내리면、쉽사리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다。
눈이 내리기전에 수확을 끝내고、세금을 내고、충분한 비축을 준비하고 월동한다。
그것이 이 지역에서 겨울을 나는 방법이다。
겨울은 농한기라 일이 없다。그에 따라 수입도 없다。
그래서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에、동쪽으로 돈벌이에 가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성인 여성이 가지만、간혹 성인 직전의 아이도 동행한다。
여성의 객지벌이라는 말에 무심코、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벌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 했지만、
실제로는 술을 만들거나 숯을 굽거나、혹은 토목공사라든가 성실하게 벌고 있다고 한다。
뭣하면 오히려 동쪽이 돈벌이가 좋다는 얘기도 들려온다。반대로 겨울에 벌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직업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그에 관련한건지、정말 극히 드물게、행방불명이 되는 인간도 있다。
무슨 사건에 휘말렸거나、불의의 사고로 죽었거나。가출이라는 가능성도 있다。
진위는 확실하지 않지만、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있고、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한 번 있었다고 한다。
논의한 결과、남겨진 남편과 아이는 마을 전체에서 돌보게 되었고、아이는 무사히 성인이 되었다。
이런 작은 마을인만큼 서로 도와야하지만、잘도 그렇게까지 돌봤다고 생각한다。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다。
그런 얘기를 듣고나서 그런지、
겨울이 찾아옴과 동시에 동쪽으로 향하는 마을 사람들의 등에서 애수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겨울은 일조 시간이 짧고 기분이 울적해지기 때문에、그게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객지벌이에 향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바가 있는건 사실이다。
무엇을 생각하는가。잘 생각해보니、나는 이 마을을 떠난적이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승하여 마을에 자주 장보러 가지만、나를 데려가준 적은 없다。
부모의 데이트를 방해하는 취미는 없기에 지금까지 데려가 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이미 10살이다。해가 밝으면 11살이 된다。
경험의 대부분은 재산이 된다。직접 돈을 벌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지。
정체한 지금이야말로、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심기일전에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가는 날이 장날。마침 거실에 있는 어머니와 담판을 짓기로 했다。
「안된다」
막힘없는 대답。설득할 틈도 없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머니의 정면에 앉으며、약간의 희망을 품고 말을 나눈다。
「어째서인지요」
「모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럼 묻지。나이는?」
「10입니다」
「지금까지 노동 경험은?」
「가사노동 밖에」
「특기는 뭔가」
「검입니다」
「누가 그런 인간을 고용하겠는가」
반론을 떠올리지 못하고 팔짱을 낀다。
자신의 말을 되새긴다。
10살。노동경험 없음。검이 특기。그리고 남자。
돈을 벌기에는、이 세계의 상식에서 조금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아들아。너는 남자다。돈벌이는 남자의 일이 아니다。집에 있어라」
「하지만 어머니」
「돈걱정은 필요 없다。이래 봬도、가족을 먹여살리기에 충분한 돈을 벌고 있다」
우리집의 가계 사정은 알고 있다。
어머니는 검술 지도로 벌고 있다。검성의 명성은 절대적이다。그 이름만으로 보수는 치솟는다。
구체적인 액수는 듣지 못했지만、아무 불편 없이 일가족이 먹고살만큼은 벌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저는 돈걱정을 하는게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마을에 가보고 싶어서」
「데려간적은……없는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팔짱을 낄 차례였다。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다。
「어머니……」
지금은 밀어붙일 때다。애원해 본다。
어머니의 눈썹이 실룩거리고、마침내 한숨을 내쉬었다。
체념이 섞인 것처럼 보였다。약간의 희망이 연결되었다。
「안된다」
하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마을에는 유괴범도 있다。너라면 손쉽게 받아치겠지만、만일의 경우도 있겠지。돈벌이는 안된다」
「……」
「마을은 기회를 봐서 데려간다。그걸로 참아라」
「……네」
더 이상의 양보는 바랄 수 없어보인다。결정했으면 꿈쩍도 않는것이 어머니다。
배수진의 자세로 나도 고집 모드에 돌입하는 방법도 있다。
그걸 해버리면 끝、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하고 수렁에 빠질 뿐이겠지。관계도 악화될 것 같다。
물러날 때겠지。
어머니를 설득할 수 없었다면 아버지를 설득해도 의미는 없다。
그렇다기 보다는、이 상태라면 아마도 아버지를 설득하는게 더욱 고생스러울거다。
전초전인 어머니 한 명도 설득하지 못했다면 연속으로 패전이다。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현관을 통해 밖으로 나와、뒤쪽을 향해 걷는다。
얻은 것은 있다。하지만 당초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다。
마을에 데려가준다 했지만、겨울 동안에는 무리겠지。
심기일전을 바랄 수 없다면、당장 할 수 있는 기분전환을 할 수 밖에 없다。
마구간으로 향하는 이유는、애니멀 테라피가 목적이다。
말들은 내가 마구간에 들어서자마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주둥이를 들이대며 냄새를 맡는다。
두 마리 있는 말중에、밤색 말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킨다。겨울턱인 덕분에 여름과는 다른 감촉이다。
말은 콧김을 거세게 뿜으며 푸르르 울고 있었지만、냄새를 맡은 후에는 내 존재를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옆에있는 붉은색 말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쓰다듬어주길 바라는게 아니라、그저 빤히 바라보고 있다。
말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무표정으로 보인다。그것이 왠지 모르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무의식적으로 허리의 검을 만지고 있었다。
모든 『태도』를 습득했을 때 수여받은 검。어머니가 검성이 되기 전에 사용했던 것。
10살인 나에게는 아직 조금 길지만、사용하다보니 익숙해졌다。
이 검을 수여받았을 때、한 사람 몫의 검사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
진검을 품는 의미는、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어머니는 무슨 일만 있으면 「너는 남자니까」라고 말하신다。
검사이기 이전에 남자다。그리고 아들이다。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결코 잘못은 아니지만、그런 자세로 접해오면 답답함을 느낀다。
최근、어머니는 확연히 나에게 연습을 시켜주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여동생에게 집중하고 있다。지금이 중요한 시기라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불평할 수도 없다。
하지만 계속 해오던 훈련이 끊어지니 쓸쓸하다。
이런 저런 것들에 더해、돈벌이 계획이 실패하여 낙심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구간 옆에있는 펫 오두막이 거세게 흔들렸다。존재를 주장하듯 흔들흔들 거린다。
힐끗 벽을 바라보고 무시한다。그랬더니 몇 초 후에 더욱 길게 흔들렸다。
그것은 지진이라도 왔나 착각할만한 흔들림이었다。
동요한 말들이 크게 울고、나는 벽을 걷어 찼다。
감정 제어를 하지 않은만큼、부서지진 않았지만 소리가 꽤 크게 울렸다。
잠깐 흔들림이 멈추고、다음 순간에는 더욱 큰 흔들림이 돌아온다。이해했다。틀림없이 시비를 걸고 있다。
「오라버니……?」
오두막 벽 너머로 나와 펫이 싸우는 것을、어느샌가 찾아온 여동생이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었다。
「무얼 하고 있는겁니까」
「아니。아무것도」
「어째서 벽을 차고 있었나요」
「이 벽 너머의 녀석은 여전히 따라주지 않는구나」
「그 대형 도마뱀은 어머니만 따릅니다」
「그랬지。이전、아버지를 삼키려던 것을 떠올렸다。살의가 솟네」
「즉각 처분하죠」
「할 수 있다면、하고싶네」
탈 것으로서 우수한 탓에、쉽사리 처분할 수 없는게 난점이다。
베어도 된다면 진즉에 벴다。그야말로 진검을 수여받은 그 날에。
홧김에 한 번 더 벽을 찬다。이어서 여동생도 찬다。나보다 사양하는게 없었다。
쌓인게 있었을지도 모른다。저쪽은 이미 질렸는지、벽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오라버니。어머니와 무언가 말다툼을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만」
「다툰게 아니야」
「하지만 어머니가 무척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 계셨습니다」
「너도 어머니의 표정을 꽤나 알게 되었구나」
「딸이기에」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여동생은 기분 좋은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무슨 얘기를 하셨던겁니까」
「돈을 벌고 싶다고 했어。거절 당했지만」
「……돈을? 어째서?」
「왠지모르게」
「왠지모르게?」
엄청 파고든다。
그럼。어떻게 대답해볼까。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어。나는 마을에 가본적이 없으니까」
그 이상의 대단한 이유는 없다。생각해봐도 떠오르는건 없었다。결국 그저 단순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굳이 꼽자면、정체해서 울적한 기분을 해소하고 싶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정체 했다는걸、여동생에게 말할 수 없다。여동생 자신이 정체했다면 더욱이。
밤색 말을 쓰다듬는 나의 옆에서、여동생도 붉은색 말을 쓰다듬는다。
말이 기분좋은듯 콧김을 뿜으며、더욱 쓰다듬으라고 재촉한다。
나도 여동생도 말하지 않는다。마구간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말을 쓰다듬고있으니 욕구가 쌓여갔다。
옆에는 여동생도 있다。이건 뭔가 할 수 밖에 없잖아。
「아키」
「네」
「말을 타자」
「하……」
의아해하는 여동생을 두고、아버지를 부르러 달려간다。
한마디에 찾아온 아버지가 안장을 달아주고、말에 오르는걸 도와준다。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신장이 낮아서 혼자 탈 수 없지만、일단 타기만 하면 이쪽 차례다。
말을 못 타는 아버지가 부러운듯 바라본다。왠지 우월감을 느껴버린다。
「아키。이리와」
「네」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지만、부름에는 솔직하게 응해준다。
내민 손으로 여동생을 끌어올리고、내 앞에 앉힌다。
여동생은 말에 익숙하지 않아서 중심이 흔들리며 불안하지만、뒤에서 허리에 손을 두르고 단단히 지탱한다。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회두했다。
「그럼 잠시 산책하고 오겠습니다」
「달리는게 하면 안 돼。위험하니까」
「네」
역시 부러워하는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집의 부지에서 밖으로 나간다。
풀밭에서 흙을 밟자마자、발굽소리가 울려퍼졌다。
걸을 때마다 따각따각하고 리듬좋은 발소리에는、릴랙스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듣고 있으니 마음이 진정된다。
「경치는 어때」
「높아요」
「좋은 경치지」
「네。엄청」
처음에는 긴장했던 여동생도 점점 익숙해져서、지금은 나에게 체중을 맡길 정도로 적응하였다。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경치에는 각별함이 있다。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에 미소가 흐른다。
마을 주민이 말로 활보하는 우리들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다。
여동생뿐이라면 몰라도、내가 있으니 말을 걸고싶어도 망설이는 것 같다。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면、여동생의 대인 능력을 향상시키기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모처럼 즐기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행동은 피하고 싶었다。
다음 기회에 하자。
그런 생각을하며 피하고 있었는데、이런 때에 한해 저쪽에서 말을 걸어오는 기특한 사람이 있다。
등골이 쭉 뻗은 초로의 남성。동물 가죽을 조끼처럼 가공하여 걸치고 있다。엄청 따뜻해 보인다。
진행 방향에서 다가온 그 사람은、우리 옆에 멈춰섰다。
「뭐냐。말따위에 타고。자랑 하는거냐? 부럽네」
말투가 시비조인 것은 평소부터 그렇지 때문에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이 마을에서 몇 안되는、먼저 접해오는 사람이다。사이좋게 지내자。
「평안하신지요 겐씨。좋은 기분이에요。함께 어떤가요」
「바보같은 소리。떨어져서 뼈라도 부러지면 어쩔거냐。이제 젊지 않다고」
겐씨는 흥하고 콧방귀를 끼고、여동생을 바라본다。
여동생은 고집스럽게 겐씨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시선은 정면에 고정되어 있다。
「여전히 붙임성 없는 계집이다。인사 하나도 없는거냐。이게 인기인이라니 이해가 안되네」
「저한테도 조금 나눠줬으면 좋겠네요」
「너는 기분 나쁘잖아 꼬맹이」
여전히 하고싶은 말을 전부 하는 사람이다。
그 탓에 나와 마찬가지로 피해지고 있다。
친근감을 안기에는 충분한 이유다。
「오늘은 어디로?」
「산책이다。볼일도 뭣도 없다」
「산의 상태는 어떤가요」
「몰라。올해는 동면하겠지。예전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행이네요」
「아아。다행이지。피투성이의 꼬맹이따위 보고싶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말만 하고、겐씨는 떠나버렸다。
그 뒷모습을 배웅한다。초로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튼실한 몸매다。사냥꾼은 몸이 재산이다。
남자라고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련하고 있겠지。한가지 더 친근감을 느꼈다。
「피투성이……?」
여동생이 중얼거린다。
「다친 사람이 있나요?」
「옛날 얘기다」
「……혹시、그건 오라버니?」
「잘도 알았네。하지만 지나간 일이야」
아픈 경험은 별로 떠올리고싶지 않다。
대화를 중단하고、말을 움직여서 마을을 누빈다。
훈련장에도 가보고 싶지만、말이 걷기에는 조금 위험하다。
그만큼 길이 정비되어있지 않다。하지만 노력하면 지나갈 수 있을지도。
어떻게 할까 고민중인 나를 뒷전으로、여동생은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다치신건가요? 언제인가요?」
「한참 옛날 일이야。이미 다 나았다」
「괜찮으세요? 어째서 다치신건가요?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아。어렸던거야。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어」
「무슨 말인가요? 무엇을 한건가요?」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다가 실수해서 다쳤어。정말 그것뿐이야」
그건 그거대로 별개의 이야기지만、사실이기 때문에 그쪽을 말해둔다。
나이 10살에 상처가 끊이질 않는 인생이다。
「그것보다 아키。저쪽에 아이들이 있네」
손가락을 가리키는 방향에 아이가 5명 있다。
남자 한 명에 여자 네 명。부담감 넘치는 조합이다。
「아키보다 연하인가。이쪽을 보고 있네」
「……네」
「타보고 싶은 것 같네。한마디 건네볼까 하는데 어때」
「무시하고 지나가죠」
「아키……」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지나가죠」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굴어。아이가 싫은거야?」
「엄청 싫습니다」
「……」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남매가 나란히 친구 한 명 없는 상황、여동생만이라도 어떻게든 하고 싶은데。
나라는 반면교사가 가까이 있는데、어째서 이렇게 된걸까。
「친구는 중요하다。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외로울 때도 함께 있어주고、곤란한 일이 있으면 힘이 되어 준다。
소중한 관계다」
「오라버니。저는 오라버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만 있으면 외롭지 않아요」
허리에 두르고 있는 팔을 꾹 붙잡는다。
그건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처럼 느껴졌다。
「나는 언제나 함께 있을 수는 없다。언젠가는 집을 나간다。어머니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럼、그때까지 함께 있어주세요。그걸로 충분합니다」
「될 수 있으면 계속 같이 있어주고 싶지만」
멀리 떨어져도、살아있는 한 연결이 있다。
만나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삶이란 그런거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죽으면 끝、만날 수 없다。
연결이 끊기고、영원한 이별을 피할 수 없다。기억마저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한다。물리적인 죽음과、기억에서의 죽음。
그 이론대로라면、나는 네 번 죽게 된다。
그건 이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아키。언젠가 너에게도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정말 멋진 거야。언젠가 알려주고 싶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
그것들은 시간과 함께 풍화되어、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결코 피할 수 없다。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앞으로 정말 그들을 잊어 버린다 해도、그들을 만나、경험하고、
느낀 것들은 평생 마음속에 남아있다。그것만큼은 잊을 수 없다。
경험은 재산이다。재산은 사람의 삶을 풍족하게 해 준다。
아아、멋진 인생。
이 멋짐을 이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본인이 뭐라 말하든、천천히 조금씩。정성을 담아서。
인생이란 이렇게나 멋진거라고 알아줬으면 좋겠다。
적지 않게 나의 영향을 받고있는 이 아이에게、여러가지를 알려주고 싶다。
기쁜 일、싫은 일、즐거운 일、괴로운 일。우열없이 인생의 모든 것을。
그것이 전생을 가진 나의 의무겠지。
고집스럽게 고개를 흔드는 여동생을 꼬옥 안으며、그렇게 마음을 새롭게 결의 했다。
-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