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감미로운 독。
미아는 상처하나 없는 상태로 깨어났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핀다。
당장은 상황파악을 못했지만、시간과 함께 천천히 떠올렸다。
───『패배』했다는 기억을。
「……흐으」
한 줄기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읏、으으……」
주저앉을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최대한 평범을 가장하고、치료해준 신관에게 감사인사를 건넨다。
방을 나와서 복도를 걷는다。
걷고、걷고、뛴다。
그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져 멈추지 않았다。
미아는 자신의 방에 도착하여 곧장 문을 닫고 잠갔다。
문에 기대어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우、으으」
미아는 그저 울었다。
오열했다。
한 번 넘쳐나기 시작한 그것은、더이상 멈출 수 없었다。
분함、무력함、그런 수많은 감정이 섞여 눈물로서 흘러내린 것이다。
그로부터 미아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그녀의 방을 노크하는 자도 있었다。
미아를 걱정한 『릴리』와『아벨』이다。
하지만、그녀가 응하는 일은 없었다。
모두 무시했다。
누구와도 얘기하고싶지 않았으니까。
───똑、똑。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 내버려둬。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미아의 목소리에는 조용한 분노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어차피 또 『릴리』와『아벨』이겠지。
거의 대화해본 적도 없는데 왜이렇게 신경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르지만、아무튼 지금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미아의 마음에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감히 나에게 말하는 것인가?」
돌아온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목소리。
그리고 그녀를 웃도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루크』였다。
하지만 누가됐든 마찬가지다。
그녀의 의사가 변하는 일은 없다。
「열어라。얘기 좀 하자」
「그러니까 지금은───」
「닥쳐。너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금의 그녀조차 질려버릴 정도로、타인의 기분을 신경쓰지 않는 극히 오만한 말이었다。
「열어。열지 않겠다면 손수 부숴주지」
「아、알겠어……! 알겠으니까」
루크는 그녀의 틀어막힌 마음을 비틀어 열고、흙발로 침범한 것이다。
미아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문이 부서질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에、마지못해 열었던 것이다。
「……뭐야」
「얼굴이 엉망이군、미아」
그리고 루크가 무슨 말을하나 싶었는데、그건 너무나 예상 밖의 말이었다。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괴로운가?」
「……엣」
분노는 금방 가라앉았다。
그저 한마디。
루크의 한마디는 미아의 마음속 틈새에 파고들었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그때 미아는 분명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자、무의식적으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미아는 쑥스러움을 감추듯 서둘러 닦아냈다。
「이、일부러 그런 말이나 하러 왔어?」
「글쎄? 잠깐 마력을 빌리마」
돌연、마력을 빼앗기는 감각。
갑자기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져서、미아는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무、무슨───」
「흠、좋은 속성이다」
루크의 손바닥 위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는 작은 『사슬』을 본 순간、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치유』는 말할 것도 없고、『번개』와 『사슬』또한 훌륭하다。그런가、『번개』는 신체 능력 향상에도 사용할 수 있군。
강화 마법과는 근본이 달라서 마법 허용량을 무시할 수 있다。한계는 있겠지만 좋은 속성이다。
『사슬』은 『적의 감지』와 링크하여 자동 요격으로 사용하면 재밌겠군」
루크의 『사슬』이 5개로 늘어났다。
미아조차 동시에 2개밖에 꺼낼 수 없는 것을、5개。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그 사슬 하나하나에 『번개』가 부여되어、파직파직 대전하고 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다、당신……」
굉장해。
너무 굉장해。
루크의 실력은 알고 있었다。
아니、알고 있다는 착각을 했을 뿐이다。
───『괴물』
눈앞의 이것은、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다。
「흠」
그 순간、루크가 발동했던 마법이 사라졌다。
「너에게 제안이 있다。───나의 『말』이 되지 않겠나?」
「……에?」
미아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지만、너무나도 맥락이 없어서 뇌가 이해하는 것을 거부했다。
「『부하』、『하인』、호칭은 뭐든 상관없다。내 말을 믿어 의심치 않고 마음속 깊이 섬기는 존재。
그런 것을 갖고싶어서 말이지」
루크는 평범한 일상속 잡담처럼 말했다。
「그、그런거 될리가───」
「된다면、두 번 다시 그런 기분을 느낄 필요 없다」
「───읏」
「방금 보여준 것처럼、나는 너를 이끌어줄 수 있다。힘이 필요하겠지? 이제 그런 기분은 느끼고 싶지 않겠지?
그렇다면 나의 『말』이 되어라。너를───패배라는 이름의 『공포』에서 해방시켜주마」
광인의 헛소리라며、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루크의 말에는 영문모를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감미로움이 있었다。
독이라는걸 알아도 『자진』해서 삼킬 정도로、지독한 감미로움이。
(……나、나는 왜───)
미아는 공포에 떨었다。
루크의 『말』이 된다는 선택지가、자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무의식중에、그녀는 진심으로 루크의 『말』이 되는 것을 검토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그 사실을 부감하여 인식했기 때문에 공포를 품은 것이다。
하지만───그녀의 마음은 이미 그 감미로운 독에 범해졌다。
그래서 미아는 묻지않을 수 없었다。
「마、말이라니……대체 뭘 하면 되는건데……?」
「───크크」
미아의 표정、떨리는 목소리、그런 사소한 정보에서 루크는 이 “실험”이 나름대로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뭐、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필요할때 너의 힘을 빌려주면 돼。그저 그것 뿐이다」
「필요……한거야? 나의 힘이……」
「그래。필요하다」
「…………」
그 말을 듣자마자、오싹、하고 미아의 마음이 떨렸다。
위로해준 것도、상냥하게 행동해준 것도 아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강제로 문을 열게 되고、급기야 『말』이 되지 않겠냐는 제안。
그런데。
그런데도。
(루크가 나의 힘을 원하고 있어。그 사실이 그저───기쁘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취한듯한 기쁨을、미아는 느끼고 있었다。
지금껏 루크에게 관련된 시간은 길지 않다。
오히려 무척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말 한마디 한마디가 영혼을 녹이듯 감미롭다。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낮잠 자는듯한 안락함이 느껴졌다。
───더욱 나를 요구해줘。
그녀는 거스를 수 없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조금、생각하게 해줘」
자신의 마음에 따른다면、곧장 끄덕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간신히 버텼다。
이건 결코 즉결할 내용이 아니다。
일단 냉정하게 생각해야할 일이다。
그녀에게 간신히 남아있던 이성이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흠、그런가」
「───아」
루크가 아주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지 그것뿐。
단지 그것만으로 、미아는 가슴이 찢어지는듯한 죄악감을 느꼈다。
이 선택은 절대로 틀렸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그런 자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금 당장 정정하자。
정정해야만 한다。
미아가 그렇게 결심했을 때。
「내일 또 오지。좋은 대답을 기대하겠다」
루크는 그렇게 말하며 미아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그 순간、그녀는 뇌에 전기가 통한듯한 감각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아아」
다리가 풀리며、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뭐야、왜그래」
그것은 루크에게도 예상 밖의 일。
어깨에 손을 얹었을 뿐인데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주저앉은 것이다。
영문을 모르겠다。
그리고、상황은 더욱 가속한다。
「뭐、뭐하는 거야!?」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가 돌아보자、그곳에는『릴리』와 『아벨』이 있었다。
미아가 신경쓰여 다시 상황을 보러 온 것이다。
「괘、괜찮아!?」
「…………」
미아의 뺨은 붉고、눈도 어딘가 공허하다。
분명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그녀에게 이상은 없다。
루크에게 닿은 것이 트리거가 되어 온갖 감정이 폭발、그래서 조금 방심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방금 막 나타난 릴리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명백히 이상 상태인 미아와 곁에 있는 루크다。
「다、당신! 루크잖아!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다。일일이 소리치지 마라。시끄러운 여자군」
「뭐라고ー!?」
루크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시끄러운 여자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
그 결론에 이르러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소리치는 릴리를 무시하고。
그리고、침묵을 관철하던 아벨과 엇갈리는 순간、
「루크군도 그녀를 걱정해서 찾아왔구나?」
「……하?」
루크는 어이가 없었지만、아벨은 그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희마하게 웃을 뿐。
말할 필요 없다는 듯이。
(……뭐냐 그 『나는 알고있어』같은 눈。정말 아니라고……)
이후、루크 또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지쳤기 때문이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조금 생각에 잠긴다。
(말을 늘리는 것은 생각보다 수고가 드는군。
나에 대한 『충성』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상대방의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유도하는 작업。
말하자면 그것 뿐이지만、경우에 따라 비극을 연출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실험』은 너무 형편이 좋았다。
미아와 로이드、둘 중 하나는 반드시 패배하고 감정의 흔들림이 생긴다。
그래서 마음에 틈이 생겼다。
루크에게는、그게 미아든 로이드든 어느쪽이든 상관 없었다。
또한、“최초”의 패배라는 것도 좋은 조건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세 번째는 두 번째보다 패배에 의한 감정의 흔들림이 적어진다。
그렇기에 이번 서열전은 안성맞춤이었다。
───『말을 늘린다』는 실험에。
단지、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루크는 확신했다。
미아를 말로 삼을 수 있다고。
하지만、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뭐、처음치고는 잘한 편이지。───칫、역시 꺼림칙하군」
루크는 이번 일로 『요란드』의 가치를 이해해버렸다。
────『말을 늘리는 말』
그 희소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너무나 귀중하다。
간단히 놓으면 안될 정도로。
「……하아、검이나 휘두를까」
흐트러진 사고를 떨쳐낼 때는 검을 휘두르는게 최고다。
루크는 세워둔 검을 집어들고、방을 나왔다。
++++++++++
다음날 아침。
젖빛 새벽이 어둠을 몰아낼 무렵。
「저기……될게。───루크의 『말』」
「…………」
아침 일찍 루크의 방에 찾아간 미아는、뺨을 붉히고 머뭇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이번 실험은 실패라고 생각했던 루크는、아직 이른 아침인 것도 있어서、몇 초간 입을 열지 못했다。
───『요란드』의 등장。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남자를 만남으로서、루크는 『말』에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실험을 했다。
말을 늘리기 위한 실험。
그 결과、머지않아 『마법 기사』에 이르는 소녀가 루크의 『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