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세계로
정신을 차려보니 숲을 걷고 있었다
깨달았을땐 이미 숲을 걷고 있었다고 밖에 설명 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건 게임으로 밤을 새기 위해 편의점에
과자를 사러 가는 부분까지다
내가 살고 있던 곳은 시야에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뿐인
삭막한 곳이다
나무라고 해봤자 도로 양옆에 드문드문 있는 정도다
이렇게 햇빛을 가릴 정도의 큰 나무의 숲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 설마 ......」
콘크리트 정글인 도시에서 나무 투성이의 숲까지 헤매는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숲 자체에도 위화감을 느끼고있다 뭔가 낯선 풍경이다
모르는 곳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나무나 풀이 무언가 다르다
이런 환각 같은 상황에 평소 라노벨을 좋아하는 오타쿠로써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린다
「아니 ! 아직 결론내리긴 이르다 ! 침착하고 ...... 일단 증거를 모으자」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변 상황을 살핀다
먼저 근처의 나무에 손을 대고 촉감을 확인한다
키가 크고 떨어져있는 잎의 모양으로 보면 침엽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무끼리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잡다하게 자라있는걸 보면
식림된 나무는 아니다
잎을 주워서 관찰 해보면 녹색의 촘촘한 잎이 그물망 처럼 되어있고
까칠까칠한 촉감이 생소하다 나의 얕은 지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무다
땅에서 자라고있는 풀도 육안으로 아슬아슬 확인 가능할 정도의
그물망 모양으로 되어있다
아무래도 처음 느낀 위화감은 주변의 풀과 나무가 익숙하지 않아서인듯 하다
평범한 일본의 숲도 외국인이 보기에는 낯선 풀과 나무 뿐이라
이질감이 굉장하다고 들었으니 내 위화감도 비슷한 경우겠지
「적어도 일본은 아닌거같네, 이건 정말 혹시나 일지도 ...... 」
이세계 전이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잠들었던 기억도 없으니 기절하거나 약에 당해서 납치됐다는 가능성도 없어보인다
내 이름은 하라다 미나토 15살
평범한 고등학생이며 싫어하는 과목은 체육인 오타쿠이다
외동으로 태어나 귀가부로써 오타쿠 동료들과 그럭저럭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 복장은 위아래 운동복에 낡아빠진 운동화로 지갑도 핸드폰도
집을 나올 당시의 기억과 동일하다
기억 상실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지만
자각 할만한 기억의 누락은 없어보인다
「스테이터스 오픈 !」
라노벨 단골 대사를 외쳐봤다
「…………」
아무 일도 없이 내 목소리는 숲에 묻힐 뿐이였다
「시스템 커맨드 ! 파이어 ! 프리즈 !」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알고있는 마법명을 외치거나
어릴적 나름 진지하게 시도해봤던 기의 방출을 시도 해봤지만
허무해질 뿐이였다
「이상하네 ...... 역시 이세계가 아닌건가 ...... ?」
전혀 성과가 나오지 않는 마법 연습에 질려버렸다
게다가 이 곳에 머물러봤자 아무 성과도 없어 보여서 이동하기로 했다
일단 나무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학교의 등하교 때만 걷는 비실이가 숲을 누비는건 꽤나 힘들었다
당연하게도 전파가 안 잡히는 핸드폰을 보니 한 시간 정도를 걷고 있었다
실망하며 고개를 떨구고 시야에 들어온 운동화는 안그래도 더러웠지만
흙먼지가 묻어 여느 때보다 한층 더 초라해 보였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될거라고 낙관적이였지만 아무래도 만만치 않았다
1시간을 헤매고 아무것도 찾지 못한걸 생각하면 최악의 경우
노숙을 해야하지만 물도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적어도 편의점에서 과자를 구매한 후라면 ......」
불안함에 부정적이고 의미없는 생각만 하게된다
운동화의 더러움이 신경쓰이는 것도 발밑만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별 수 없네 ...... 좀 쉴까 ......」
피곤함 가득한 몸을 이끌고 근처의 통나무에 걸터 앉는다
산길이긴해도 한 시간 걸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피로가 쌓였다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이
모든 행동을 방해하고있는 느낌이다
피부로 느끼는 이 묘한 감각은 습도가 높거나 공기가 옅은거라 생각했지만
호흡이 평범하게 가능하니 신경쓰지 않고 행동했다
움직임을 방해하는 수수께끼의 공기는 건강할 때는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조금씩 조금씩 확실히 체력을 깎아 온다
지치면 지칠 수록 저항이 점점 무거워졌고
급기야는 주저앉을 정도까지 체력을 빼앗기고 있었다
「젠장 ...... 어떻게 된거야 .......」
통나무에 앉은 자세로 팔꿈치를 무릎에 짚고 손에 얼굴을 묻는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밤이 오고 만다
그건 너무 위험하다
체감상 현재 온도는 25℃ 안팎으로 비교적 지내기 쉽지만
만약 밤이 되면 기온이 얼마나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만약 기온이 낮아질 만한 곳이라면 운동복으로는 불안하다
초조함만 더해지지만 피로한 몸을 움직이기를 뇌가 거부하고 있다
체력없는 오타쿠이기 때문에 이럴 때 의지가 약해지는건 당연하다
그러고 있다보니 땅에 떨어진 가지를 밟아 부러뜨리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
......있다
나무 사이로 보인 그 생물은 확실하게 이쪽을 향하고 있다
「크다 ......」
온몸의 땀샘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멀리서 보인 그 생물은 본능적으로 절대 이길 수 없다는걸 느끼게했다
체고 2M정도로 보이는 그것은 4족 보행에 온몸이 털에 뒤덮여있었다
언뜻 곰처럼 보이지만 사지가 굵고 얼굴이 털로 덮여있어 눈이 보이질 않는다
멀리서 보이는 정보로는 이정도일까
적어도 맨몸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위험해 ! 위험해 ! 위험해 !」
나는 피폐해진 몸을 억지로 움직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발 ! 쫓아오지 말아줘 ! 눈치채지 말아줘 !)
짐승이 우연히 자기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을 뿐이라는 가능성을 바랐지만
아무래도 그 바람은 헛된 것이였나보다
뒤에서 땅을 밟는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면서 뒤돌아보니 그 짐승이 네 발로 뛰어오는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나를 사냥감으로 인식했나보다
필사적으로 달려봤지만 죽음을 알리는 발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심장이, 폐가 아프다 !
다리가 휘청거린다 !
결국 발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리고 심지어 짐승의 숨소리도 들려온다
목을 매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데 등줄기에 오한이 들었다
직감이 고한다
죽는다
나는 직감에 따라 다리를 틀어 왼쪽으로 몸을 날린다
몸을 날리며 시선을 짐승쪽으로 향하니
내 머리가 있던 위치에 굵은 앞발이 지나가는게 보였다
휘둘러진 짐승의 앞발은 그대로 나무에 부딪히지만 그 기세는 죽지 않고
나무가 꺾인다
그 나무는 가느다란 잔나무가 아니고 지름 40cm정도의 나무였다
피하지 않았으면 확실히 죽었다 그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공격은 피했지만 두려움과 피로에 다리가 떨려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앗 죽겠다)
짐승은 뒷다리로 일어나 앞발을 치켜올린다
역시 곰같은 생물인듯 하다
곰과 달리 주둥이가 튀어나와있지 않아서 빅풋같은 느낌이다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당장에도 나를 후려칠듯한 앞발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본다
(아 ー 적어도 여자친구는 만들고 싶었는데 .......)
쓸데없는 미련을 남기고 죽음을 각오한 순간 짐승의 팔에 무언가가 꽂혔다
「에 ?」
짐승은 소리도 내지 않고 자신의 다리에 상처를 준 물건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자신도 덩달아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가죽과 철로된 갑옷을 입은
10명정도의 사람들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쏴 !」
예리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리자 일제히 짐승에게 화살이 꽂힌다
아무래도 목소리와 몸의 선으로 미루어 전원 여성같다
여자 중 한 명이 피리를 크게 분다
짐승이 그 피리에 반응했는지 표적을 나에서 여자들로 전환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흩어져 !」
구령과 동시에 여자들이 좌우로 나뉘어 달리기 시작한다
짐승은 좌우로 갈라진 여자들중 왼쪽 방향의 여자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속도는 짐승이 월등했는지 순식간에 여자들을 따라 잡았지만
오른쪽으로 흩어진 여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짐승의 뒤에서 화살을 쏜다
짐승의 등에 화살이 꽂히지만 효과는 희박한 것 같다
왼쪽의 여자들은 몸을 돌려 활을 버리고 창을 들었다
여자는 다섯명
짐승은 가운데의 여자를 향해 다리를 내려 친다
여자는 크게 후퇴하며 피하지만 짐승은 더욱 추격해온다
좌우에 있던 여자들은 지체없이 창을 내질러 움직임을 멈춘다
창이 꽂힌 짐승은 움직임이 약간 둔해졌고 가운데 여성은 추격을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짐승은 팔을 휘둘러 꽂힌 창을 털어내고 다시 돌진한다
그 움직임은 둔해 보이지 않았고 역시 효과는 희박해 보였다
짐승에게 노려지는 여자는 회피에 전념하고 손이 빈 여자는 공격을 가하는
훌륭한 연계로 짐승의 공격을 계속 막아낸다
쫓기지 않은 쪽 여자들도 무기를 창으로 바꿔 들고
연계에 가담해 짐승을 둘러싸듯 포진한다
그 모습을 멍하고 보고있던 나에게
리더라고 예상되는 구령을 내렸던 여자가 달려왔다
「너 ...... 선이 가늘지만 남자인가 ! 다행이다 !
보다시피 결정타가 부족하다, 손 좀 빌려줘 !」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허리에 차고있던 검을 내게 내민다
「아니 ...... 검따위 써본적이 없어서 ......」
「무기 가릴때냐 ! 됐으니까 도와줘 ! 전사가 이쪽으로 오고있지만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어 !」
검을 내게 떠넘긴 여자는 짐승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무거워 !」
가볍게 건네진 칼은 제법 두툼해 양손으로 쥐는 게 고작이다
비틀거리면서 칼집에서 어떻게든 검을 뽑아내자
짐승을 둘러싼 여자중 한명이 창을 버리고 허리의 검을 뽑아 들고 짐승을 향해 달려나간다
여자를 향해 내질러진 짐승의 공격은 여자의 어깨에 위치한 금속 보호대의 표면을 깎는다
여자는 허리를 굽혀 몸을 극한까지 낮추고 그대로 짐승의 발밑으로 달린다
여자는 달려 나가며 검으로 짐승의 발가락을 내려쳤다
지금까지 큰 빈틈을 보이지 않던 짐승은 자세가 무너지며
동시에 9명의 여자가 창으로 찍어 누른다
「지금이다 ! 이 녀석의 머리를 !」
「에 ? 아, 젠장 !」
아무래도 나설 차례인 것 같다
나는 두려움으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어떻게든 검을 들어 짐승에게 달려간다
꼼짝 못하게 된 짐승을 향해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어 혼심의 힘을 다해 내리친다
「오 오 오 오 !」
나의 혼신의 일격은 짐승의 머리에 명중하여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아귀에 충격이 전해져온다
「에 ?」
하지만 두껍게 덮인 털에 의해 충격은 짐승의 두툼한 두개골에서 튕겨졌다
검이 튕겨진 나는 무방비하게 만세를 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일격에 화가 났는지 짐승은 창이 더 깊이 박히는걸 신경도 쓰지 않고
팔을 휘둘러 창의 뿌리쳤다
짐승은 만세를 한 얼빠진 얼굴을 드러내고 있을 나를 향해 발톱을 내리쳐오지만
피하려고 해도 혼신의 일격이 막 튕겨져 나온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짐승의 발톱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내 뇌가 죽음을 느꼈는지 시야가 슬로우 모션이 된다
(움직이라고 내 몸 ! 뭔가 없나 ! 깨어나라 숨겨진 힘 ! 지금밖에 없다고 !)
두 번째 생명의 위기에 자주 읽던 라노벨과 같은 특수한 힘에 눈을 뜨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정하게도 내가 힘에 눈을 뜨는 것은 지금이 아니었던 것 같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짐승의 발톱
그 순간, 발톱과 나의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그 사람은 손에 든 거대한 쇳덩어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등 뒤로 전해지는 짐승 이상의 이상한 압력에
콤마 몇 초 전까지 죽음의 위기였다는 것을 잊고 매료되어 있었다
남자가 내려친 쇳덩이는 짐승의 털에 막히는일 없이 그대로 땅까지 도달하여
절단된 짐승의 팔과 함께 흙이 허공을 날았다
천천히 흐르던 세계가 원래의 속도를 되찾자
짐승의 팔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와 남자와 나를 더럽혔다
「~~!!!」
짐승은 무언가 소리치는 것 같지만 내 귀로는 알 수 없다
벌려진 입에서는 송곳니가 아닌 인간과 같은 납작한 이빨이 보였다
남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쇳덩이를 다시 들어올려 단숨에 내리친다
짐승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은 것처럼 보였다
짐승의 머리에 내려쳐진 쇳덩이는 두개골을 양단하고
등뼈를 좌우로 쪼개며 가슴을 가르고 배 근처에서 겨우 멈췄다
짐승은 그 일격에 절명한다
남자가 쇳덩이를 뽑자 짐승의 몸은 땅바닥에 쓰러졌다
「늦어서 미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