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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류이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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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

 

 

 

류이치는 밖으로 나온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에게 친할아버지는 흔히있는 따뜻한 가족같은 존재가 아니다

원래대로라면 손자로서 류이치가 사랑받은 세계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류이치를 사랑하는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

 

「뭐냐고」

 

 

 

전화 건너편의 할아버지는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

볼일없이 일부러 전화 하지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돈을 입금했을 때 정도밖에 연락을 안하니

 

이렇게 할아버지가 가만히 다물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하마사키라는 교사다』

 

「……흐~응?」

 

 

 

하마사키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귀찮은 일이 될 것 같다고 류이치는 혀를 찼다

바로 얼마 전, 점심시간에 하마사키가 시즈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에 입회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 일인가, 그렇게 생각한 류이치지만, 아무래도 빙고인 것 같다

 

 

 

『겨우 …… 아니, 전부터 학교에서 얘기는 듣고 있었다. 너는 역시 그 여자의 자식이라는거다』

 

「여자와 관계를 맺는거 ? 그딴거 고등학생이면 평범하다만」

 

 

 

류이치는 내뱉듯이 말했다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그런 관계의 이성이 있다는 점은 신기하지 않다

 

오랜만에 왜 전화했나 싶었는데, 역시 류이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너와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가 없다. 하지만 얼굴을 보지 않는 것만 해도 만족한다

너의 얼굴을 보면 그여자가 생각나니까』

 

 

 

류이치는 그건 나도 그렇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할아버지가 류이치를 싫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들어도 상처받을 단계는 넘어섰다

하지만 오늘따라 인내의 한계였는지, 류이치에 대해 직접적인 말을 써왔다

 

 

 

「……………」

 

 

 

그럼에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좋을대로 말하게 두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7세의 사춘기라서 그렇겠지

 

 

 

「나는 당신 아들의 자식이기도 하다만. 내가 보기엔 아버지도 그 망할 아줌마와 동일한 수준의 쓰레기다」

 

 

 

그렇게 류이치가 말하는 순간 전화 저쪽에서 분노 담긴 고성이 울려 퍼졌다

 

 

 

『아들과 너희를 똑같이 취급하지마라!!애초에, 너희가 없었다면 ……아들은!!쿨럭!커헉!』

 

 

 

 

큰 소리를 낸 탓인지 할아버지는 괴로운 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무심코 류이치가 괜찮냐고 말을 걸어 버릴 정도로 심했다

 

그런데도 류이치는 말을 걸지 못했다 ..... 당연하다, 왜 내가 걱정해야 하는건가 류이치는 생각했다

 

 

 

『큿……하아……하아! 알겠냐 류이치, 너는 그 쓰레기의 자식이다,

너의 존재 자체가 아들을 괴롭혔다!그게 너의 죄다!』

 

「……」

 

 

 

존재 자체가 죄라는듯하다


류이치는 전화 건너편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둠을 알게 된 류이치와는 정반대로 아름다운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

 

 

(……시끄러워……시끄러시끄러시끄러워!)

 

 

태어난 것 자체를 부정당하는 일은, 역시 마음에 와 닿는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도 들어왔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은, 류이치에게 저주처럼 새겨져 있다

 

 

『당신을 아들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너를 아들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류이치는 충동적으로 통화를 끊으려 했다

 

 

 

「줘」

 

「……에?」

 

 

 

하지만 통화를 끊는 것보다 빠르게, 어느샌가 와있던 치사가, 류이치의 스마트폰을 부드럽게 뺏어들었다

 

 

 

「치사……?」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렇게 류이치는 치사에게 안겨졌다

스윽 몸에서 힘이 빠지듯, 그 자리에 무릎을 굽히고, 치사의 가슴에 얼굴이 파묻혔다

술냄새, 그럼에도 치사의 좋은 향기와 함께 안심이 됐다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류이치의 할아버지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도 류이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치사를 말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류이치는 치사의 가슴의 감촉을 얼굴로 느끼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에?류이치가 집적거린 여자 ……?완전 틀린 얘기는 아니네요」

 

 

 

평소와 달리 상대를 깔보는 듯한 말투의 치사는 드물었다

 

치사의 등장으로 더욱 분노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류이치에게도 잘 들린다

 

 

 

「저기 할아버지, 저는 아주 멋진 남자애를 알고있어요. 이름은 시시도 류이치라고 합니다」

 

「……………」

 

 

 

류이치의 머리에 놓여 있는 손이 천천히 어루만져 온다

 

그것은 아이를 진정시키는 어머니 같았고, 혹은 동생을 진정시키는 누나 같은 감각이다

 

물론 류이치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여자를 다루는게 능숙하고 기쁘게 해 주는 것도 아주 잘하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류이치를 정말 좋아하는 애들이 많아요.

아 맞다, 류이치는 두 명의 여자를 구해줬다구요 ? 질나쁜 남자에게서 구한 거예요」

 

 

 

두 명의 여자, 그것은 아마 시즈나와 사츠키겠지

 

 

 

「류이치의 도움을 받고 그런 그에게 이끌려 관계를 맺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돕지 않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류이치는 분명히 구하고 있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그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사가 무슨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 초조해하는 눈치다

 

 

 

「대단하다 생각하지 않나요?이 세상에는 자신의 아들에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쓰레기같은 아버지도 있나봐요. 그런 사람들 속에서 류이치처럼 상냥한 애는 정멀 멋진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치사의 웃음기띤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의 류이치는 몰라도, 바뀐 지금의 류이치는 그런 아이에요

저보다 어리지만 굉장히 의지되는 착한애에요」

 

 

 

잠깐 말을 멈춘 치사는 어투를 거칠게 하고 말을 이었다

 

 

 

「방금 말한 쓰레기같은 아버지가 누군지 아시겠나요 ? 그렇군요 모르겠나요

당신 아들 얘기야 빌어먹을 자식아」

 

「어, 어이……」

 

 

 

치사의 말은 멈추지 않는다

 

 

 

「류이치는 누군가를 돕는 상냥함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포용력이 있다. 당신 아들한테는 없던 걸 류이치는 갖고 있는 거야.

당신의 아들은 류이치를 사랑하지 않았다, 돕지 않았다,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다 !

당신 아들에게 없는 소중한 것을 지금의 류이치는 가지고 있다고 !」

 

『닥쳐!어짜피 너도 엉덩이 가벼운 여자겠지!아들에게서 행복을 빼앗은 그 매춘녀와 똑같다! 

그런 쓰레기가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이번에는 선명할 정도로 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류이치에게도 들렸다


 

「나에 관한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 망할 영감아. 뭐, 나도 류이치도 당신하고 더이상 얘기할 게 없어

그래도 한 가지만 말해 둘게요」

 

 

 

치사는 류이치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류이치만을 비추고 어디까지나 다정한 마음을 담은 눈동자였다

 

작게 심호흡을 한 치사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며 말을 이었다

 

 

 

류이치는 우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우리도 류이치를 바라고 있거든요.

류이치는 결코 필요없는 존재 따위가 아닌 우리에게 둘도 없는 존재입니다

 

「!?」

 

 

 

파직, 마음을 덮고 있던 어둠에 금이 갔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을 류이치는 깨달았지만 그래도 아연실색해 눈가에 손을 댈 수도 없다

 

 

 

「몇 번이고 말할게요. 류이치는 필요없는 존재 따위가 아냐,

당신들이 류이치를 부정한다면 우리가 그를 긍정해 보이겠어요.

그는 우리에게 어디까지나 소중한 존재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치사는 통화를 끊었다

 

 

 

「……어머, 후후……괜찮아 류이치. 너무 심했나 싶지만, 이정도는 말해둬야지」

 

「……아아」

 

 

 

나름 오래 통화를 해서 그런지 목욕을 마친 시즈나와 사츠키가, 걱정스러운 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몸을 뗀 치사 덕분에 류이치의 표정이 드러났고 누구보다 빠르게 시즈나가 류이치의 품으로 달려갔다

 

 

 

「……하……거 참、몇 년만에 울어보는거지

 

 

 

채워진 마음이 흘러 넘치며 류이치는 오랜만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의 사건으로 류이치와 할아버지의 사이는 수복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수복을 기대할 만한 사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류이치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부정 당하더라도 곁에는 류이치를 긍정하고 바라는 존재가 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류이치군, 평생 곁에 있을게. 그러니까 울지마」

 

「……울고 싶지 않아. 울고 싶지 않은데 왠지 눈물이 멈추질 않네」

 

 

 

강한 척 류이치는 웃었다


시즈나, 치사, 사츠키 순서로 바라보고 류이치는 말을 이었다

 

 

 

「……고마워」

 

 

 

그것은 짧은 감사의 말, 그러나 그 말은 확실히 닿았다

그것은 밤하늘의 별, 하지만 지금의 류이치의 마음속 어둠은 걷혔을 것이다

 

이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의 마음도 빛에 덮여 함께 빛나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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