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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잠들지 못하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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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빼먹는건 오랜만이다。

 

 

옥상이거나 빈 교실이거나、오늘처럼 비오는 날에는 체육창고에서 시간을 때운다。

 

이전에는 누군가가 가져다둔 잡지를 읽었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가져온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재생한다。

 

좋아하는 노래가 뇌에 스며들면 빗소리나 추위 따위 신경쓰이지 않게 된다。

 

음악이 나를 싫은 일로부터 떼어내 주지만、이번만큼은 그게 안된다。

 

하지만 집중에 도움은 된다。

 

 

고민하는 것은 싫다。해결할 필요가 없다면 전부 팽개치고 기타라도 만지작 거리는게 성미에 맞다。

 

 

――아니、하지만 말야…。

 

 

신경쓰여서 잠들지 못할 정도라면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고민하는 것과 고민되는 것은 별개라는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방치할 수 없는 일이면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머리가 안좋은건 손해다。특히 우등생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니 미간의 주름이 20% 증가한다。

 

 

고작 4개월、하지만 4개월。짧은 기간 밖에 모르는 상대인 주제에 아무래도 임팩트가 너무 강하다。

 

 

어제 목격한 그 녀석과 모르는 아줌마의 마마활동인지 매춘인지 알 수 없는 현장도 그렇고、

 

그것 외에도 인상이 너무 크다。

 

얼마 전까지 지속된 고백 소동 때문에 고생하는걸 옆에서 지켜봤는데 꽤나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최종적으로 나도 불려가서 가짜 연인 역할까지 하게되고、그건 참 고생이었다。

 

참으로 재밌는 동성 친구 같아서、나도 웃었는데。

 

 

――돈이나 스릴을 갈망하는 것처럼은 안보였는데。

 

 

브랜드같은거 신경쓰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의외로 사복에 투자하고 있는건가、난 남자용품은 잘 모르지만

 

게다가 스릴보다는 평온 같은걸 좋아할 것 같다。

 

왠지 영감 같은 느낌이 있고 여자 휘두르는 것보다 강아지랑 산책이라도 하는게 어울려。

 

휘둘리고 있는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그 녀석은 나처럼 단순하단 말이지。

 

내숭떨고 있지만 한 꺼풀 벗기면 친근함도 존재한다。

 

 

내 안의 그 녀석은 나쁜 녀석이 아니다。엉뚱한 일로 알게 됐지만 죽이 잘 맞는다。

 

말로 하진 않지만 친구라고 인정하지 못할 것도 없다。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면 말리는게 좋다。

 

 

몽글함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수업까지 빼먹고 고민했는데、답이 나온 것 같다。

 

 

「아?나 혹시 고민할 필요 없었던거 아니야?」

 

 

친구가 걱정 되어서 안달났던거야。그럼 그 녀석에게 한마디 해주면 해결된다。실로 단순한 일이다。

 

…체육창고에 괜히 왔네。

 

요즘은 수업을 착실히 들어서 학생지도실에 불려간적 없는데 또 뭔가 잔소리 듣겠네 。

 

 

「…왠지 열받아。」

 

 

결국 나는 2교시 시작에 맞춰  교실로 돌아와 비 때문에 늦어졌다 말하고 수업을 들었다。

 

그 녀석에게는 방과 후에 보기로 약속하고 그때까지 대화는 없었다。

 

뭐라 말해야할지 생각하는 동안 시간이 지나간건 아니다。

 

 

 

 

 

 

 

 

 

 

 

 

「너 마마활동 하는거냐?」

 

 

결국 빙둘러 말하지 않고 바로 묻기로 했다。주변에 사람이 없는건 확인 했으니 괜찮다。

 

 

「누군가에게 뭔가 들었어?」

 

「그만둬。내가 누군가에게 뭔가 듣는다고 믿을 것 같아?

어제 역 뒷골목에서 모르는 아줌마와 키스하는걸 봤어。」

 

「…적어도 변명할 여지는 남겨줘。」

 

 

명백히 연상인 정장 차림의 아줌마였다。모자지간의 나이 차이도 아니었고 설령 맞다 해도 키스는 안 하겠지。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건 들었지만 설마 우등생인 이 녀석이 그럴줄은 몰랐다、단지 그것 뿐이다。

 

항복이라고 말하고 싶은듯、방금까지 팽팽했던 분위기를 평소대로 되돌린다。

 

 

「그렇게나 돈이 필요해?」

 

「뭐、그런거지。

사실 학교는 그만두고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고등학교 중퇴는 이래저래 취업에 고생이니까。

효율 좋아、이런건。」

 

 

흠칫흠칫 물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철렁했다。

학교에서는 즐거워 보였는데 그렇지도 않았던 걸까。

하지만 그렇게 절박했다니、언젠가의 알바전사라는 예상은 의외로 맞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걸 얘기해도 괜찮걸까 이 녀석은。

 

 

「알려줘도 괜찮은거야?」

 

「넌 정말 좋은 아이야。어째서 불량한거야?」

 

 

아 열받아。사람이 걱정해 줬는데 뭐야 그 말투는!역시 넌 귀엽지 않아ー。

그리고 좋아서 불량한게 아니니까。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삼키고 가만히 노려본다。

 

 

「미안。걱정해 줬는데 이상한 소리를 했네。여러가지로 빠듯한거야。」

 

 

평소에는 좀 더 여유로운데 말야、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는 피로감 같은게 느껴졌다。

 

우등생을 유지하고 알바도 하고 밤에는 아줌마를 상대 하고、지치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학교에서도 여러가지 문제로 애먹었고 주의력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1년간 해왔던게 사실일 경우 원래대로라면 들킬 일 없이 잘 숨겼을거라 생각한다。

 

 

보도[각주:1]나 순회[각주:2]가 성행하는 여름방학에는 수를 줄이고、부모와 학교에 야간 알바의 허락을 받고、

 

어느정도 수상쩍은 소문이 퍼져도 괜찮도록 집사 카페에서 알바하고…이렇듯。

 

조금만 들어도 예방선을 몇 중으로 쳐놨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나로서는 학교나 다른 학생에게 들키면 곤란하지만?」

 

「…하지만、그런 위험한 일은 그만두는게 좋아。」

 

 

목격했던 충격과 충동대로 캐묻고 있지만、나의 목적은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다。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대가를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정의감만으로 방해할만큼 나는 깨끗한 인간이 아니다。

 

 

「곤란하네。그저 리스크를 감수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 해주면 안돼 ?」

 

「안돼。」

 

 

더욱 진지한 목소리로 부정한다。이 녀석이 위험한 짓은 하지 않길 원한다。

 

협박으로 멈출 타입이 아닌 것은 이 몇 주 동안 봐왔으니 잘 알지만、

 

그럼에도 내가 설득할 가능성이 있다면 할 수 밖에 없다。

 

 

「그럼、어떻게 돈을 벌라는거야。」

 

 

언성을 높이는 것도 애원하는 것도 아닌、그저 무심하게 사실을 고하는 듯한 싸늘한 목소리。

 

잘 볼 수 없는 이 녀석의 공격적인 일면。

 

 

「대신할걸 준비해줄 수 없으면 말리지마。

나의 보금자리도 식사도 무엇하나 보상해줄 수 없으면서 방해만큼은 하지 말아줘。」

 

 

본심이겠지。말에서 그렇게 생각할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명확한 거절 반응에 조금 주춤거리게 된다。

 

그만한 각오가 느껴지는 말이었다。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친구 같은건 만들지말걸 그랬네。」

 

「…미안。」

 

「사과할 정도라면 친구에게 이런 말 하지 않게 해줬으면 좋았으려나。」

 

 

조금 눈물이 나올뻔 했다。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건 역시 괴롭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는건 100%의 거절은 아닐테니까、물러날 수 없는 부분에 내가 너무 파고든거겠지。

 

이번만큼은 내가 물러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옛날부터 섬세함이 없는건 알아줬다。

 

 

「하지만、위험하지 않은거냐 억지로 당한다는 얘기도 있고…。」

 

「뭐 이래봬도 단련하고 있으니까。상대는 전부 연상이고 너보다 힘도 없어。그리고 실전은 거절하고 있어。」

 

 

위험하지 않다고 단언하지 않는게 이 녀석의 선긋기겠지。

 

게다가 뭐、확실히 이 녀석이 나보다 힘도 체력도 뛰어난건 사실이다。

 

분하지만 같이 알바했던걸 생각하면 납득할 수 밖에 없다。

 

…근데 굳이 그걸 언급 해야해?섬세함이 너무 없는거 아니야?

 

 

「그리고 대부분 올라타는건 나니까。

최악의 상황에도 도망칠 수 있도록 하고 있고、일단 손님의 소지품에 날붙이가 없나 확인하고 있으니까。」

 

「엣。」

 

 

지금 올라탄다고 했어?그건 이른바 기승위?하지만 실전은 하지 않는다 했고、마음대로 당하는거 아니였어?

 

확실히 이 녀석이라면 마음대로 당하는 것보다 올라타서 뭔가 하는 장면이 상상된다。

 

그러고보니 어제 목격했을 때도 이 녀석이 적극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은

 

 

「흥미 있으면 해줄까?」

 

 

후욱 하고 목에서 공기가 새어나온다。

 

그런 장면을 상상하고 있던 것이 겹쳐져서、터무니없이 이미지가 부풀어 오른다。

 

말도 못하고 당황하고 있으니 팔을 붙잡혀 벽까지 밀려나고 얼굴이 다가온다。뭔가 좋은 냄새가!

 

 

「피、필요없어。」

 

 

한심한 목소리가 나온다。주변에 사람은 없다는 것이 뇌리를 스친다。

 

묘하게 요염한 녀석이라 생각했던 적은 있지만、실제로 눈앞에서 당해보니 두근두근거린다。

 

이건 독이다。

 

 

「다행이다。미성년자와 야한 짓은 할 수 없으니까。」

 

 

네가 할말이냐 라든가 살았다 라든가 여러가지 대사가 떠오르지만 다리가 풀려서 그럴때가 아니었다。

 

팔이 해방되고 간신히 몸이 자유로워진다。

 

확실히 이거라면 마음대로 당할 일은 없어보인다。

 

 

「…이제 시집 못 가。」

 

 

남자에게 완패당한 여자라니 이 얼마나 비참한가。입으로도 힘으로도 이기지 못하고 한심하다。

 

뜨거워진 얼굴을 식힐 겸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비 덕분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게 그나마 구원일까。

 

 

「미시마는 귀여우니까 괜찮아。」

 

 

역시 이 녀석 너무 싫어!!

 

결국 집에 돌아가서 남자우위 플레이를 알아보고 더욱 해상도가 높아진 망상에 시달리게 되는 것을

 

이때의 나는 알 수 없었다。


 

  1. 불량 청소년 집중 단속기간 같은거라 보시면 됨 [본문으로]
  2. 순찰과 동일함. 경찰이나 학교 선생이 여름방학, 축제 등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곳을 순찰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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