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한 비는、점점 거세지더니 폭우가 되었다。
지면의 음푹한 곳에 물웅덩이가 생기고、수면에 파문이 일어나고 사라졌다。
멀리서 번개가 번쩍이고、조금 늦게 굉음이 찾아왔다。
어느새 이렇게 쏟아져 내렸나 싶어서 하늘을 뒤덮은 암천을 올려다보며、잠시 그 자리에 멈춰선다。
비구름의 행방은 서쪽이었다。즉 바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고 있다。
서쪽에는 산맥이 있지만、고도는 그리 높지 않다。
어디까지나 흘러가버릴 것이다。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현실도피 중에도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거슬린다。
속옷까지 젖어 있어서 불쾌함에 몸서리 처진다。
이렇게 되기 전에 돌아갔어야 했지만、단련에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덕분에 흠뻑 젖었다。
이렇게나 젖었다면、더욱 젖을 일은 없을테니 마음을 다잡고 단련에 힘쓰기로 했다。
그리고、유유히 귀가했지만 아버지에게 혼났다。「뭐하는 거야!?」라고、실수한 아이를 꾸짖듯이。
실제로 바보였다。
항생 물질은 커녕 과학적인 치료약 조차 없는 이 세계에서、설령 감기어도 중증화 되면 죽을 수 있다。
인플루엔자는 확실히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매년 수많은 아이들이 병걸려 죽는 것 같다。
특히 남자애는 죽기 쉽다며、걱정과 분노가 뒤섞인 설교를 듣는다。
잠시동안 설교가 이어졌다。
하지만 분노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한 번 크게 심호흡하니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 시점에서 「일단 목욕하고 오렴」이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몸을 젖은채로 두는건 위험하다는 판단이다。이해는 된다。하지만 아직 아침이다。
아침조차 먹지 않았다。아침 목욕은 너무 사치스럽다。
물과 장작이 아까우니、천으로 닦고 모닥불을 쬐면 충분하다는 의견을 아버지에게 전했지만、
이번에야말로 호랑이의 수염을 건드린 것 같다。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불같은 기세로 혼났다。
그 어머니조차 방구석으로 피난했다。도망치지도 못하고、정면에서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나는 등골을 폈다。
아버지가 화내는 일은 좀처럼 없다。
평소에 화내지 않는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는 것도 있지만、그 이상으로 화나게 한 것이 면목 없었다。
몸을 움츠리고 조용히 설교를 듣고 있지만、마음은 한창 도피중이었다。
폭풍이 어서 떠나가길 바라며 마음은 이곳에 없었다。몸에서 떠나간 의식이 집 안을 돌아다닌다。
그 덕분에、뒷마루에 인기척이 있다는걸 눈치챘다。
왠지 익숙한 기척이었다。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 번 집 안을 살피고、여동생의 기척이 없다는걸 깨닫는다。
이 시점에서 아버지의 설교를 한귀로 흘려듣고 있었지만、
아키가 이 악천후 속에 외출중인 것을 깨닫고 그럴때가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혼나고 있는데 이 무슨 배짱인가。터무니없는 여동생이다。
「아버지。아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끼어든 나의 목소리에、아버지는 조금 이상으로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뭐?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얼버무리려는거야? 애초에 안듣고 있었지。
너는 정말 반성을――――」
「아마도、마당에서 목도를 휘두르고 있지 않을까 하고。들리지 않습니까。휘두르는 소리」
잠시 정적이 찾아온다。
화톳불 소리와 빗방울이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
그것들에 섞여서、무언가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잠깐 보고올게」
아버지는 빠른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오고、일순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살짝 모습을 살펴보니、마당에서 목도 휘두르고 있었을터인 여동생은 목덜미를 붙잡혀、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흠뻑 젖은 여동생이지만、아버지에게 혼나는 도중에도 무표정이었다。
불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다。저 얼굴은 혹시 반항기에 돌입한 것일까。조금 빠른 것 같지만。
여동생의 반항기에 대한 걱정은 잠시 치워두고、나에 대한 설교는 끝났기 때문에 따뜻해지기로 했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피어오르는 화톳불에 양손을 뻗고 따뜻함을 얻었다。
서서히 체온이 올라가는걸 실감한다。
역시 목욕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방구석에서 존재감을 지우고 있던 어머니가 내 옆에 앉으며、물어왔다。
「왜 돌아오지 않았지?」
너무 늦은 질문이었다。
이제와서 물어보는걸 보면、어머니조차 격노한 아버지는 무서운 것 같다。
「눈치 채는게 늦어졌습니다」
「그렇다는건?」
흥미롭다는 목소리와 함께 몸을 내밀어온다。
「늦었다는건 무슨 말인가」
「그만큼 집중 했기에」
「비가 내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인가」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내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세계에 녹아들었을 때、쓸데없는 정보는 차단하고 있다。
필요없는 것을 잘라내고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에 눈치채지 못했다。비가 내리는건 당연하니까。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그야말로 전생부터、변함없이 내리고 있는거니까。
「그런가。내쫓고 있는가」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좋지 않은 것 같나요。고치는게 좋을 것 같습니까?」
「그렇군……。내 생각에는、이 세상에 불필요한 정보는――――아니、잠깐……」
「어머니?」
하던 말을 삼키고、어려운 얼굴로 생각에 잠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어머니가 입에 담은 것은、돌변한 이런 말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
말하는 내용은、들어보면 납득할만한 내용이었다。
그저、어머니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 철학적인 대사가、직정경행을 내달리는 어머니에게서 나올줄은 몰랐다。 1
아연실색한 나에게 어머니는 훗 하고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어느쪽이든 골라야만 하니까、멋있게 고르는게 기분 좋잖아。절대로』」
「……누구의 말인가요」
「옛 친구의 말이다」
어머니는 천장을 올려다보고、떠올리며 말해준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했다 생각하고 바보취급하며 웃어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 해석한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석하신겁니까?」
「당시에는 액면대로 받으들이고 바보 취급했다。하지만、실제로 이 말 자체에 별다른 의미는 없겠지。
딱딱하게 살고있던 나에게、힘을 빼고 살라는 충고였을거라 생각한다」
그 사람과 어머니의 관계를 모르니까 뭐라 말할 수 없다。
말만 들어보면、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빙둘러 전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이외의 부분에서 통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자주 과거를 떠올린다。너도 놀랐겠지。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이제 겨우 30이잖습니까。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원하는대로 낳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슬슬 포기해라。더 이상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다」
확실히 단언해버렸다。
나이 차이가 큰 동생을 갖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깨졌다。
「렌。아무리 검성이어도、나 자신은 아직도 미숙하다。그렇기에、너에게 했던 조언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걸 머릿속에 넣어둬라」
「자신가인 어머니가 드문 말씀을 하시는군요」
「검성은 수많은 도달점 중 하나일 뿐이다。여기가 모든 곳의 정상인 것은 아닌거다。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다。나 같은건、운좋게 도달했을 뿐인 연약한 사람이다」
「저는 도달할만 해서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머니는 일순간 눈을 감고、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기로 했다。
「……방금전의 대답이다만、나는 고치는편이 좋다고 생각한다。이 세상에 불필요한 정보는 없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생각해라。그걸로 열리는 길도 있다」
그 말에는 동의견이다。
외계의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어떻게 보면 생각을 포기하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여차하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검의 길에서는 치명적일터。
「그럼、두 번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건 내가 아닌 네 아버지에게 말해라。그건 최근에 심로가 쌓여있다。안심 시켜줘라」
「네。분노가 식을 때를 가늠해서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라。……그리고、목욕 해라。감기에 걸리면 검 실력이 둔해진다」
「알겠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끄덕이고、여전히 여동생을 혼내고 있는 아버지를 곁눈질 하며、목욕물을 데우기로 했다。
우리집 목욕탕은 좁다。
어른 한명이 들어갈 정도의 통에 물을 붓고、불을 피운다。
나무통은 전생의 집이 호화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작다。
다리를 뻗을 수 없을 정도다。드럼통 목욕통이 더 크다。
몸을 씻는 것만 생각한 결과겠지。기술도 자원도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목욕물은 우물물을 사용한다。데우기 위한 연료는 나무다。
물도 연료도 한정되어 있으니 최대한 절약하여、최소한의 물과 장작으로 물을 데웠다。
준비가 끝났다면 물이 식기전에 즉시 입욕한다。
「하우우」
물에 잠긴 여동생의 입에서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리 위에 내가 얹어준 수건을 올려두고 녹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있다。
직전까지 혼나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여동생의 정면에서、마주보듯 통에 몸을 담그고 있다。
어른은 한 명 밖에 들어가지 못하지만、어린애라면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목욕할 때 우리는 세트로 취급된다。
내가 목욕한다면 여동생도 하고、여동생이 한다면 나도 한다。그런 취급。
오랫동안 그런 취급을 받아왔고、지금 이 순간도 변하지 않았지만、난 11살에 여동생은 9살이다。
둘 다 성장기다。이렇게 같이 통에 들어가면、여기저기 닿을 정도로 커졌다。
더 어렸을 때부터 같이 들어갔으니、이제와서 신경쓸 사이는 아니지만、무슨 일이든 한도라는게 있다。
아무리 남매여도 남자와 여자라는 것에 변함은 없으니、이제 슬슬 신경써야 할지도 모른다。
「하아아……」
얼굴까지 잠긴 여동생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다리를 뻗고、최대한 힘을 빼고 있으니 내가 있을 공간이 없어서、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무척 기분 좋아요 오라버니」
「그건 다행이네」
나의 몸 이곳저곳에 여동생의 다리가 닿고 있다。
그 접촉 빈도는 고의가 아닐까 싶을정도였다。실제로、고의겠지。
저만큼 편하게 있으면 닿을만도 하다。
머리 끝까지 잠겼던 여동생의 머리위에 있던 수건은、머리를 떠나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수건을 집어들고 아키의 얼굴을 덮어본다。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진 여동생은 당황한 나머지、몸이 미끌어지며 화려하게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내가 당황할 차례였다。
「미안。괜찮냐」
「콜록、콜록! 오라버니、무슨 짓인가요……」
「장난기가 발동했어。미안해」
「원망할거에요……」
이상한 곳에 물이 들어갔는지、코를 훌쩍이며 그런 말을 한다。
지그시 노려보는 눈빛은 어머니를 방불케 했고、뱀에게 노려지는 개구리처럼 몸이 움츠러들었다。
다음 순간에 스윽 다가왔고、무슨 짓을 당하려나 싶었는데、내 어깨에 턱을 얹으며 기댈 뿐이었다。
「하우우」하고 김빠지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온다。원망은 그 일순간에 사라졌나보다。
「온도는 어때」
「하아……。매우 좋은 느낌이라、기분 좋습니다」
「다행이네。……근데、아키는 언제부터 밖에 있었어? 내가 돌아오기 전부터?」
「음……。오빠가 돌아오자마자 밖으로 나갔습니다。단련을 할까 해서」
「이렇게 비가 오고있는데。젖어버리잖아」
「오라버니도、빗속에서 단련하지 않았습니까」
말그대로、직전까지 내가 했던 짓이니까、너무 강하게 혼낼 수 없다。
어느 낯짝으로 혼낼 수 있겠는가。
「……내가 혼나는 것을 봤잖아」
「그래서 어떻다는거죠」
어머니가 자주 하는 말이다。그 말이 나왔을 때가 포기할 때。
반론도 저항도 전부 봉인하는 마법의 말。하지만 여동생이 사용하니 반항기로만 보인다。
아직 9살인데。
「아버지에게 걱정 끼치면 안돼。나는 반성했어。두 번다시 하지 않아。
아키도 두 번다시 하면 안돼。알았지?」
「……」
모처럼 잘 타일렀는데 대답이 없다。
어ー이 하고 등을 두드리며 반응을 재촉해봐도、보이지 않는 곳에서 철썩철썩 물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이건、엄격하게 말해둬야 하나。
그러고싶지 않지만、이건 오빠의 의무다。
하기 싫어도、여동생을 위해서라면 해야한다。
얼굴을 마주보고 설교하기 위해 떨어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여동생은 나에게 안긴 상태에서 고집스럽게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이 녀석」
「응……」
「떨어지렴」
「으응……」
「떨어져」
「으으ー응」
아무리 어깨를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힘을 주면 줄수록、반대로 강하게 안겨온다。
이미 완력에서 완전히 밀리고 있다。이거 곤란하네。이렇게 고집스러우면 방법이 없다。
완전히 제2의 어머니가 완성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으니 회유책으로 간다。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상냥한 말을 건네본다。
「그렇게나 아버지가 싫어?」
「……」
「싫어?」
「……아뇨」
「그럼、그럼 아버지의 말을 듣는게 싫은거야?」
「……아뇨」
「그럼、어째서?」
「……오라버니가」
「응?」
「오라버니가、그렇게 했으니까……」
반응하기 곤란했다。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걸까。
솔직히 기억나는게 없다。내가 하는 것을 전부 따라하라고、말할리가 없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아키가 입을 열어주었다。
「오라버니가 빗속에서 단련하고 있다면、저도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잘못된 것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어。내가 혼났는데、자신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오라버니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되니까……」
「등?」
「……오라버니의、등」
아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이미 중얼거림 수준이 되어 있다。달라붙어 있으니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여동생이 언급한 등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되새긴다。
기억이 자극받아、떠오른 정경이 있다。
몇 년 전 겨울。
마을이 원숭이 무리에게 습격받아、많은 사람이 죽어버린 그날의 일。
갑자기 들려온 원숭이 울음소리와、하늘까지 울려퍼지는 사람들의 비명。
하얀 눈이 붉게 물들고、몇 명의 마을사람이 쓰러져 있다。
내가 달려들어봤자 아무도 구할 수 없었고、그저 지면에 납작 엎드려서、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결국、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을 구한 것은、산 사냥에서 급히 돌아온 어머니였다。
순식간에 줄어드는 원숭이들。
마지막 한 마리까지 베어내고、생채기 하나 없이 서 있는 어머니와 피에 젖은 붉은 도신。
그 때、그 순간、눈 앞에서 펼쳐진 광경은、마치 모든게 꿈만 같았다。
악몽이자、동화속 이야기 같았다。생각해보면、내 인생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 때의 등을、나는 지금도 잊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나의 등 따위、초라한 것이겠지。
「……아키라면、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어머니의 딸이니까」
「그렇지 않습니다。너무 멀어요」
「멀어보일 뿐이야。너에게는 재능이 있으니까、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어」
「……서두르지 않았어요」
귓가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대답한다。
언젠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게 아닐까 생각 했었다。
내가 전생을 알고있는 만큼、여동생의 허들이 쓸데없이 높아진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키는 단 한 번도 약한 소리를 뱉은 적이 없다。
괴롭하든가 힘들다든가、무엇하나 흘리지 않고 한결같이 노력해왔다。
보통이라면 진즉에 도망갔을만한 혹독한 단련에도、불평하나 없이묵묵히 따라온 굉장한 아이다。
그래、아이인 것이다。
세상일은 아무것도 모르고、주어지는 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순진무구한 아이다。
하지만、아무리 굉장한 아이여도 멀지 않아 세상을 알게되고、현실이 들이닥치는 순간이 온다。
반항기는 자신이 안고있는 이상과 현실의 갭이 일으킨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기대치가 높을수록、현실을 알게 되었을때의 실망감은 헤아릴 수 없다。
거기서 어떻게 헤쳐나갈지는、환경에 의한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
「최근、아버지는 우리가 걱정되는 것 같다。
둘 다 자주 부상당하고、심지어 나는 얼마전에 산 사냥에 가서 엄청 걱정 끼쳤어」
「……」
「목욕 후에、같이 사과하자。걱정 끼쳐서 죄송하다고」
「……」
「아버지、싫어하지 않잖아?」
「……네」
겨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게 너무 기뻐서、아키를 꼭 껴안았다。
아키는 가슴 안에서 살짝 움찔거리더니、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이렇게 하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알았어。느긋하게 있자」
아무리 남매여도、알몸으로 껴안고 있는 것에 생각하는 바가 없는것도 아니지만、
애초에 여기는 목욕탕이고、9살 아이의 어리광이라 생각하니 대단한 저항감 없었다。
나 때문에 평소의 말과 행동、요구받는 결과로、상당한 기대가 걸려있는건 알고 있다。
그러니、가끔은 이렇게 도망갈 길을 만들어주는게 나의 일이다。
쉬지않고 언제나 팽팽하게 있으면、언젠가 끊어지는게 뻔하니까。
가슴 속에서 이따금 움찔거리는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앞으로는 틈틈이 마음편히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줘야겠는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