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 바로 밖에、그 여성이 있었다。
어머니가 나오는 것과 같은 타이밍으로 들어오려 했었는지、황급히 멈춰서서、놀란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간、곧바로 미소를 짓더니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
후두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곧바로 머리를 올릴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지만、아무리 지나도 올리지 않아서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무 말도 없이 10초 이상。여전히 머리를 숙인채다。언제까지 계속될건가 싶어서 얼굴을 마주본다。
「……뭐냐、대체」
천하의 어머니도 곤란해한다。
분명 입구 밖에는 양아치 같은 것들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키가 작은 아이같은 여성과、그것을 따르는 네 명 뿐이었다。
그 중 세 명은 오늘 하루동안 우리를 감시했던 눈빛이 나쁜 세 명이다。
손에 무기종류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역시 눈빛이 나쁘다。
어머니에게 힐끗 일별되어、도전적으로 눈빛을 더욱 험악하게 만든다。
배짱이 대단하다。그때의 관리가 떠올랐다。
남은 한 명은、이게 또 이채를 발하고 있었다。
비교적 키가 큰 어머니보다 장신이며、그 손에 들려있는건 2미터는 될법한 봉。
그것에 기대듯 서있는 모습은 역전의 용사를 방불케한다。보아하니 실력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겠지。
무심코 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기대와 선망이 담긴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였는지、그 사람은 불편한 듯 뺨을 긁었다。
묘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인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성에게 한마디 건넨다。
「카오리。적당히 해」
「……실례했습니다」
두 명의 사이에 오고간 짧은 대화에、말 이상의 것이 담겨있는 것을 희미하게 느낀다。
이름이 불려、겨우 고개를 든 여성은 미소를 띄우며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저기있는 말은 당신들의 것입니까?」
「그렇다」
참을 수 없는 분위기가 운산되어、어머니는 노골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여유넘치는 동작으로 여성은 처마 끝을 가리킨다。
그 방향에는 우리 집의 펫이 두 마리 있었다。
둘 다 처음 묶어둔 위치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붉은 말은 태연히 그 자리에 서있고、밤색 말은 지나가던 아이가 손은 흔들어、꼬리를 살짝 흔들고 있었다。
주인으로서、타인에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살짝 복잡한 심경이다。
「저런 곳에 묶어두다니、훔쳐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구요」
「걱정할 필요 없다。교육은 해뒀다」
「교육?」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할 것 같으면、마음껏 날뛰도록 교육해놨다」
그런 교육、난 모른다。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 정말 그런 교육을 해뒀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만약 진짜라면、자칫 피바람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터무니 없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매우 개성적인 교육이네요」
「훔치려는 쪽이 나쁘다」
「지당합니다」
약간 질려하는 모습이었지만 미소는 유지중이다。
연기를 잘하는 타입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어머니와 상성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진지하게 비상식적인 사람의 심리따위、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용건은 끝인가」
「아뇨。아직 조금」
「그렇겠지」
「알고 계셨나요?」
「계속 따라왔으니」
「역시 검성님。초보자의 미행따위、이미 간파 하셨군요」
어머니가 검성인걸 파악하고 있었다。
인상착의라도 나돌고 있는 것일까。영주를 벴다고 했으니、나돌아도 이상할게 없다。
오히려 나돌지 않는게 이상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용서해주세요。악의가 있어서 미행한건 아닙니다」
「그만큼 악의가 완연해 있었는데 말야」
어머니가 예의 세 명을 번뜩 노려봤다。
공기가 요동칠 정도의 위압감이 발산되었다。
검을 뽑은 것도 아닌데、그것에 닿은 것만으로 세 명의 안색은 새파래졌다。
파랗던 안색이 점점 하얗게 되고、조금만 있으면 기절할것 같은 타이밍에、장신의 여성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신의 몸을 방패삼아 세 명을 지켰다。멋있어。
「분노하시는건 당연합니다。하지만、그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말라고 명령했을 뿐、자세한 사정은 전하지 않았습니다。착각하게 만든건 저의 책임입니다。분노를 향하실거면 저에게만 부탁드립니다」
「……착각?」
어머니는 등뒤의 나를 돌아보며 무언으로 무언가를 물어온다。
왼팔에 매달려있는 아키가、어머니의 위압감에 노출되며 조금 떨고있지만、이건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다。
도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아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해본다。
생각해봐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에、일단 끄덕였다。
「……뭐、괜찮겠지。그래서、너희는 뭐냐。왜 우리들을 감시했는가」
「저희는 자경단입니다。그녀들의 등나무 문장이 그 증거입니다」
여성은 등 뒤에 네 명을 가리킨다。
각자 입고있는 한텐의 등에 문장이 들어가있다。
친절하게도、장신의 여성이 보기 쉽도록 등을 돌려 주었다。
등에 그려진 문장은、중앙의 잎에서 좌우로 꽃송이가 늘어져 원을 그리듯 되어있다。
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라질 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경단……? 아직、그런 것이 있었는가」
그 말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깃들어 있다。
그걸 듣고、여성은 유독 상냥한 표정이 되었다。
「영주는 바뀌었지만、그동안 받아온 상처는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간단하게 잊혀지지 않겠죠」
「……그렇군。미안하다。생각이 짧았다」
「아뇨。검성님 덕분에 지금이 있는겁니다。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여성에게、어머니는 다시 한 번 난감해한다。
다행히、이번에는 몇 초만에 고개를 들어줬다。
「당신들을 감시했던 이유는、무례한 부탁이 있기 때문입니다。들어 주시겠습니까」
「……듣기만 할뿐이라면 들어주지」
직전에 사과한 탓에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하기 어렵다。
이 흐름을 노린 것은 아니겠지만、잘 써먹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돌연 저 미소에 수상쩍음이 느껴졌다。
「어떤 분을 만나 주시겠습니까?」
「누군가」
「자경단의 지도자를 맡은 분입니다。
본래라면 이쪽에서 찾아뵙는게 맞지만、고령인데다 지금은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걷지도 못합니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쭈글쭈글한 노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녀석이 도대체 무슨 용건이란 말인가。
「왜 그런 인간이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만나서 어쩔 셈이냐」
「그저、이야기를」
「무슨 이야기인가」
「그건――――」
말을 멈추고、주위를 신경쓰는 기색을 보인다。
안그래도 주목을 모으기 쉬운데、자칭 자경단이 끼어들며 구경꾼이 늘어났다。
대화 내용이 전부 노출 되고있다。
「일단 장소를 옮기지 않겠습니까。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안된다。여기서 말해라」
「대놓고 이야기할 내용이 아닙니다。소문이 퍼지면 검성님께 폐가 되겠지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생각인가。
귀찮은 일임에 틀림없어 보이지만、그게 어느 정도의 것인가。
판단할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장소를 바꿀 뿐입니다。어떤가요?」
「……」
고민된다。
이 무리를 따라간 후의 일을 짐작할 수 없다。
악인이라면 절대로 따라가선 안되지만、전개라도 읽을 수 있다면 모를까 자경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악인이 아닌만큼 대응 방법도 한정되어 있다。
무기를 들지 않는 자에게 검은 쓸 수 없다。섣불리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건 피하고 싶다。
……어쩔 수 없지。
「어머니」
「뭔가」
「이대로 질질 끌면 해가 집니다。자경단이라면、뭐 나쁜 녀석들은 아니겠죠。
무슨 이야기인지 듣는게 더 빠를거라 생각합니다」
「……그런가」
나와 어머니가 대화하는 모습을、여성은 곁눈질로 관찰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의 안쪽에 시커먼 감정이 어른거린 느낌이 들어서、후드를 고쳐쓰며 얼굴을 가린다。
「듣기만、듣기만 해주마」
어머니의 승낙에 여성은 미소를 띄운다。
하지만、그 눈은 나에게 쏠려 있으며、휘감기는 시선이 무척 기분 나빴다。
인기척이 없는 길을、6개의 그림자가 걷는다。
선두를 걷고있는건、방금전 이상한 눈으로 나를 관찰한 여성
――――카오리라는 것 같다。――――그리고、그 뒤를 어머니 이하 나와 아키가 따라간다。
카오리씨는 걷는 속도가 느렸다。
그 덕분에 비교적 보폭이 큰 어머니는 페이스를 잡지 못하여、보폭이 흐트러져 있었다。
내심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게 틀림없다。
반대로、아키에게 왼팔을 붙잡힌 나에게는 딱 좋은 페이스다。
그런 우리들의 배후에는、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거리를 유지중인 장신의 여성과、
예의 눈매가 안좋은 세 명 중 한 명이 걷고 있다。남은 두 명은 말의 감시로 남겨두고 왔다。
불만스러워 보였지만、사람을 감시하는 것도 말을 감시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일이니까 불평하지 말고 힘내길 바란다。
막상 이동해보니、보기좋게 앞뒤가 막힌 형태가 되었지만、놓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으로 느껴졌다。
이제와서 그런걸 신경써봤자 의미 없지만、상대방의 손바닥 위라고 생각하니 불쾌한 기분이 든다。
실제로는 어떤걸까。
앞서가는 카오리씨의 등을 바라보며 걷는다。
모퉁이를 돌때마다、길의 폭이 점점 좁고 더러운 것이 되었으며、주위의 풍경도 썰렁해졌다。
불안을 부추기는 길을 걷게한다。이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지옥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것이 참으로 지독한 이야기다。
「어디까지 가는가」
「앞으로 조금입니다。편히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어머니의 물음도 살랑살랑 피해버린다。
이러는 도중에도、배후의 시선이 따갑다。
혼자가 되었어도、전혀 떨어지지 않는 악의에 혀를 내두르고 싶은 기분이다。
방금전、카오리씨가 악의는 없다고 변명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악의가 느껴지는 이상 그것은 거짓말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시선에 무슨 이유가 있어도 짚이는 것이 전혀 없다。그만둬 줬으면 좋겠다。
등에 꽂히는 시선에서 의식을 떨쳐내고、침묵 뿐인 여로에 꽃을 곁들일 목적으로 카오리씨에게 말을 건다。
「카오리씨는 자경단의 분인가요?」
「……」
그 한마디에 카오리씨는 갑자기 멈춰섰다。그리고 기민하게 돌아서더니、물끄러미 응시한다。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인데、무표정하게 노려보니 이상한 압력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폭력적인 그것과는 다른 압력에、아키와 함께 한걸음 물러섰다。
「어째서、그런 말을 하는거야?」
「한텐을 입지 않았고 등나무 무늬가 어디에도 없기에」
「……」
흥미롭다는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서운 얼굴이다。어딘지 모르게 불길하다。어머니에게 보였던 것과 미소의 종류가 완전 다르다。
미소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그건 끈적하고 어두운 미소가 아니라、산뜻하고 예쁜 미소 쪽이다。
「네가 말한대로、나는 자경단의 사람이 아닙니다」
계속 나를 응시하며、다른 두 사람에게도 들려주고 있다。
눈하나 깜빡이지 않아서、그 얼굴은 마치 인형같았다。
「자경단이라는 것은、아무래도 거친 일이 많아서、나 같은 인간에게는――――」
소매를 걷으며 팔을 내놓는다。
가죽과 뼈 뿐인 혈관이 드러난 피부。
건강한 인간의 그것과는 동떨어진 팔이었다。
「보시는대로 빈약하여、다소 짐이 무겁습니다」
「……그렇습니까。그에 비해서는――――」
배후의 두 사람을 바라본다。
장신의 여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마주본다。그 시선에 악의는 없다。
다른 한 명에게는 굳이 시선을 향하지 않았다。
그걸로 시선이 악화되면 이제 눈도 못마주친다。실제로、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곤란하다。
「동료라는 느낌이네요」
「관련되기야 했으니까요。게다가 연상이고。이래보여도、이미 20년 이상은 살았으니까」
믿을 수 없는 말에、카오리씨의 풍모를 발부터 머리끝까지 뚫어지게 관찰했다。
어머니보다 머리 한개정도 작은 키에、어린애 같은 얼굴。
연상이라고 해봤자 나보다 고작 한 두살 위로 보인다。성인조차 아닌 것 같다。
「한 가지 질문에 대답했으니、한 가지 질문해도 될까?」
「……부디」
「당신은 남자 아이?」
「그렇습니다만」
「그래……」
한 걸음 다가오는 카오리씨를 향해、아키가 나의 팔을 잡아당기고、양팔을 펼치며 카오리씨의 앞을 가로막는다。
적개심을 불태우며 카오리씨를 노려보는 그 얼굴은、어머니와 판박이었다。
「그 이상 다가오지마」
「에。어째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걸음 다가온다。
아키는 카오리씨가 다가오는 것 이상으로 거리를 벌리려했다。
등으로 나를 밀며、뒤에 있던 장신의 여성에게 부딪히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더욱 뒤로 물러서려 했다。
「어째서、그렇게 피하는거야? 조금 이야기 하고싶을 뿐인데――――」
그런 말을하며 손을 뻗어、아키에게 닿으려 했다。
그 손을 통렬하게 내려친 아키는、뺨을 상기시키며 여느때보다 더욱 흥분해 있었다。
더 이상은 위험해질 것 같아서、일단 두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 위치를 바꾸려 했지만、
그걸 눈치챈 아키가 고집스럽게 저항한다。
아키에게는 나와 카오리씨가 가까워지는 것이 무엇보다 싫은 것 같다。
「――――어째서」
「그만둬라」
지금까지 관망하던 어머니가 카오리씨의 어깨를 붙잡으며 제지했다。
그 손에는 상당한 힘이 담겨있다。카오리씨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보고、장신의 여성이 움직이려 했다。
그걸 카오리씨 자신이 고개를 저으며 제지했다。
「실례했습니다。지금까지 어린애에게 미움 받은 일이 없어서、조금 놀란 나머지……」
「그런가。한 가지 배웠겠군。너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어서 안내해라」
「……이쪽으로」
이동재개。
아키가 아플정도로 팔을 강하게 붙잡고 있어서、제대로 걸을 수 없다。
「힘 좀 약하게 해줘」
「이제 얘기하지 마세요」
「에……」
「저 여자와、얘기하지 마세요。다가가는 것도 안됩니다。저건 오라버니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초대라니、어디로?」
「모릅니다」
요령을 알 수 없었다。
아키에게만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공교롭게 나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얘기해서 즐거운 상대도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얘기하지 않을게。뭔가 기분 나쁘고」
「한 마디도 나누지 마세요。필요하다면 제가 중간에 서겠습니다」
카오리씨는 상당히 미움받은 것 같다。
이러는 도중에도、부모의 원수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카오리씨의 등을 노려보고 있다。
일련의 교환으로 공기가 나빠졌다。
여기서 더 꼬여도 별반 달라질게 없을 것 같다는、깨달음을 얻을정도로 험학한 무드다。
「――――도착했습니다」
무한으로 생각될 정도의 고행 끝에、마침내 도착한 곳은、사람 수십 명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훌륭한 저택이었다。
카오리씨가 느긋히 돌아보며、예의 눈매가 나쁜 사람에게 일별한다。
그러자、그 사람은 한 발 먼저 저택에 들어가버렸다。
저택을 바라보던 어머니가、툭 중얼거린다。
「편히 앉아서……?」
편히 앉기위해、굳이 이런 훌륭한 저택까지 올 필요는 없다。
어째서 여기에 끌려왔는지。이유는 한 가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속았군」
「죄송합니다」
호들갑스럽게 고개를 숙였지만、그다지 사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저택에 검성님을 뵙고싶어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들었다면 만나주시지 않았을테니까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생각인가」
「……」
역시 카오리씨는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여기까지 왔으니、얘기정도는 들어봐야 하는걸까。
속여서 데려왔을 정도니까、유무를 가리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걸까。
별로 어느쪽이든 상관없겠지。
「적어도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아니므로、별실에서 대기해줘도 상관없습니다만」
「멍청한 소리。별실에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할 생각인가」
「아무 짓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속여놓고 잘도 지껄이는군」
카오리씨는 변명 하나 하지 않고、문을 열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갈등이 있었다。
과연、따라가도 되는걸까。
속인건 분명하니까、이 앞에 어떤 함정이 펼쳐져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움직이려 하지 않는 우리를 카오리씨는 침착하게 기다린다。
등뒤에 있는 장신의 여성이 초조해할 정도로、그 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결국 분위기에 휩쓸리기로 했다。
설령 이 자리에서 도망친다 해도、언젠가 마을까지 찾아와 용건을 이루려 하겠지。
늦냐 빠르냐의 차이일 뿐이다。그렇게 판단했다。
그 방은 창문이 천으로 가려져、어둠 속에서 불이 피워져 있었다。
호위인 것 같은 인간이 침대 좌우에 한 명씩 검을 메고 정좌 하고 있으며、침대의 장막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얼굴은 커녕 성별이나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를 들으며、직전에 헤어진 카오리씨를 떠올린다。
그 사람은 마지막까지、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본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그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터무니없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서 물어보기가 무서웠다。
「방문해 주셔서、감사합니다」
장막 너머로 쉰 목소리가 들려온다。
노인의 목소리다。아마도 노파다。목소리의 톤으로 그렇게 느꼈다。
「본래라면、제가 직접 찾아뵈야 했겠지만、이러한 형태로 만나뵙게 되어、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잡소리는 됐다。용건은 뭔가」
「분노하시는 것도、당연합니다。하지만、사정이 있습니다」
술에 취한듯한 느린 말투였다。
어머니는 그와 정반대의 성급한 말투로 재촉한다。
그래서 화났다고 착각한 것 같다。여기까지 이르는 경과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평소에도 이러시니、괜힌 배려나 걱정은 필요치 않다。굳이 그걸 알려주진 않겠지만。
「저는、자경단의 지도자 역을 맡고 있습니다。하지만、보다시피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
뒤를 이어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애초에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가늘게 뜬 어머니는 진지하게 장막의 너머를 보려 한다。
잠자코 듣자는 의미를 담아 소매를 잡아 당겼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검성님께서、저희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무리다」
생각할 틈도 없는 즉답。
좌우의 호위가 분노한 기색을 내비치며、팽팽했던 공기가 삐걱거렸다。
「그만두렴」이라고 노파가 말라지 않았다면、칼부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호위 두 명이 목숨을 건졌다。
장막 너머의 노인은 잠깐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이 마을의、망루는 보셨는지요」
「아아」
「보기 흉한 것이였겠죠」
기분탓인지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과거、그 자리에는 커다란 당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중앙에 달려있는 종이 시보를 알리며、액을 내쫓고、복을 불러온다。
그런 무척 중요한 당이었습니다」
「그게 뭔가」
「전쟁으로、불타 사라졌습니다」
노파의 가녀린 음성에、확실한 증오가 새어나왔다。
「40년 이전의 전쟁에서、마을에 불이 붙어、수많은 사람이 불타 죽었습니다」
「그런가」
「그、직후입니다。병사들이 바다 너머로 철수를 시작한 것은。
바로 코앞까지 적국의 병사가 들이닥쳤는데、조국은 우리를 버렸습니다。
……그로부터、지옥이 펼쳐졌습니다」
아키의 귀를 막아야 할지 망설인다。아이가 들을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시도는 해봤지만、고집스럽게 거절당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그 무엇도 놓치지 않겠다며 오감을 날카롭게 세우고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그걸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남녀노소 가리지 않고、베이고、매달리고、터지고、찌그러지고。
마을은 피로 흥건하여、비참한 시체가 산처럼 쌓였습니다。그 비극을 두 번 다시 일으키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위해、나더러 너의 뒤를 이으라는 것인가」
「그러합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눈가를 비비는 어머니는 명백히 피로해 있었다。
하지만 두르고 있는 기력은 전혀 쇠퇴하지 않고、장막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학살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지、나에게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근거없는 자신감은 평소에도 있는 일이라、이번에도 아무 생각없이 말하는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니、제대로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의 영주를 알고있다。저건 학살따위 하지 않고、타인의 비도를 간과하지도 않는다」
「……검성님께서、영주와 친하다는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심해라。적어도 그게 영주로 있는동안 학살은 있을 수 없다」
문득、이름이 긴 의뢰주가 떠오른다。
혹시、그게 영주인 것일까。
매번매번、영주에게 검술 지도를 의뢰 받은 건가? 이 사람은。
「……당신에게는、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악역무도의 끝을 달리던 전 영주를 죽이고、선대 검성의 비호하에、무죄가 된 당신 덕분에、
우리 자경단은 공개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우리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렇다면――――」
「그렇기에、당신이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장막 너머에서 노파가 몸을 내민다。
「우리 동쪽의 백성은、전 영주를 베고、검성의 지위에 오른 당신에게、희망을 품고 있는겁니다。
당신만 계시면、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빼앗긴 것을 되찾는 것조차、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노파의 말을 삼키는데、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경단의 리더로서 어머니를 권유하고 싶다는 이야기였을 터。
하지만 지금 노파의 말은 분명 그 이상을 원하고 있다。
명상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살펴본다。
이 흐름은 좋지 않다。가능하면、지금 당장이라도 대화를 끊고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
칼부림도 개의치 않는다。뭣하면 내가 먼저 벤다。
「즉、너희가 나에게 진짜로 시키고 싶은건、국가에 대한 반역인가」
「그렇습니다」
「한몫 거들라는 건가」
「상징이 되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관여하는 것에 다름없다。공개되면 사죄는 면할 수 없다。가령 검성이어도 말이다」
「조국을 위해、백성을 위해、주저할 필요가 있는겁니까。당신은、수호가의 후예잖습니까」
수호가는 뭐지。
내가 모르는 우리 가문의 뿌리인가。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수호는 조모의 대에서 끝났다。가명도 빼앗겼다。이미 과거의 일이다」
「미야비님의 의지를 잇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의지?」
어머니가 문득 바보취급하는 듯한 미소를 띄웠다。
이렇게 웃는 것은 처음 봤다。의외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싫다。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조모도 싫다。그것들이 남긴 의지따위 잇고싶지 않다。그럴 가치도 없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머니의 말에 분노를 드러낸 노파는、거친 기침을 연달아 한다。
감정의 격렬한 변화에 몸이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
그런 노파의 곁으로、우측의 호위가 장막 너머로 사라진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침착해진 노파는 사라질 것 같은 작은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무엇을 위해、검성이 되신겁니까……백성을 위한 것이、아니였습니까……」
「너희의 기대를 배신하여 미안하지만、그저 필요했을 뿐이다。그 이상의 이유는 없다」
장막 너머의 그림자가 고개 숙인다。
멋대로 기대하고、멋대로 실망하고、멋대로 침울해져있다。
너무 제멋대로다。그래도 연민을 금할 수 없다。
이대로 일찍감치 죽기라도 하면、뒷맛이 안좋아 어쩔 수 없다。
「나도 묻고싶다。왜 이제와서 모반을 계획하는가。
영주는 죽었고、여왕은 생각을 고쳤다。오래 이어진 박해는、조금씩 약해지고 있다。
어째서 일부러 일을 키우려 하는건가」
「……」
장막 너머에서 대답은 없었다。
어머니는 거듭 물었다。
「어째서냐?」
「……늦어」
그 작은 중얼거림이 고막을 떨게한다。
「현 여왕이 왕위를 잇고、전 영주가 권력을 이은 30년 동안、우리는 지옥 속에서 살았습니다」
실의에 빠졌으면서도、노파는 똑똑히 대답해주었다。
혹시나、어머니가 생각을 바꿔주지 않을까 미약한 기대를 품으며。
「강권을 얻은 영주에게、수많은 백성이 살해당했습니다。
관헌은 기능하지 않고、여왕은 모른척 했습니다。
억눌려있던 차별의식이 부풀어 올라、박해는 격화됐다。전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아。하지만 이미 과거다。왜 이제와서……」
「과거라 말씀하시는가。아아……당신에게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 손으로 직접 영주를 벴으니、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우리는、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노파가 일어섰다。
비틀비틀 불안한 발걸음으로、장막을 헤치고 얼굴을 보인다。숨을 삼켰다。
「당신은 모르겠죠。잃은 것이 없는 당신에게는」
그건 말그대로 노인이었다。
주름 투성이의 얼굴에 검버섯、눈동자는 충혈되어 음푹 패여있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보고 알았다。
모습을 보아하니、이미 제정신조차 아닌 것 같다。
이가 없는 입에서 침을 튀길 기세로、노파는 간청한다。
「지옥을 뛰어넘어、인간으로서 삶을 되찾았지만、돌아오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그걸 떠올린 순간、덮어둔 증오가 부풀어 오릅니다。
가족 친인척、친구부터 지인까지、어제는 살아있던 사람이 오늘은 죽어있다。내일에는 자신의 목숨조차 위태롭다。
그런 일이 반복된 결과、우리의 원한은 골수까지 도달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습니다! 검성님。당신의 힘을 빌려주시기 바랍니다。부디、제발……!!」
무너져 내리듯 고개를 숙였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 무릎조차 제대로 굽히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세만큼은 굉장하여、물불 가리지 않는 자세로、어머니를 포섭하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권유해도、어머니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거절한다。나에게 그럴 생각은 없다。하고 싶다면 너희끼리 멋대로 해라」
「아아……」
절망에 가득찬 오열이 들렸다。
「당신은 우리의 적이 되겠다、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너희 편을 들지 않을 뿐이다」
「똑같은 말입니다……。왕권에 검을 들이대면、앞장서서 우리를 처단하는 것이、검성의 역할일 터。
지난 전쟁에서도 그랬습니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노파가 말을 잇는다。
「우리에게 이미 영웅은 없다……검성을 베고、만인의 적을 장사지낸 영웅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기에、당신의 힘이 필요한 겁니다……」
「거절한다。이야기는 끝이다。돌아가겠다」
설득할 틈도 없는 세 번째의 거절。
더 이상 무슨 말을해도 시간낭비다。
노파도 그걸 깨달았다。부들부들 떠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절망에 가득찬 눈동자는 그 무엇도 비치지 않았다。
허공을 바라보며 반쯤 열린 입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절규에、어머니를 제외한 전원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 외침에는、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곧바로 호위 두 명이 억누르기 위해 달라붙었지만、노파의 힘은 굉장하여、호위를 떨처버렸다。
「이 매국노가! 더러운 피를 낳아 늘린 멍청이! 부끄러운줄 알아라!
미야비님의 마음을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가!! 너는 아아아아아아아아!!!!!!!!!!」
갖은 매도를 퍼부으며、아군인 호위의 피부에 긁은 상처를 입히는 모습은 보고있기 힘들었다。
가엾다는 이외의 감상은 없었다。사람은 이렇게나 추악해질 수 있는건가。
꼼짝없이、노파의 난동을 바라보고있자、등 뒤의 문이 열렸다。장신의 여성이 등장했다。
여성은 한순간 측은한 눈으로 노파를 바라보더니、우리를 향해 미세한 손짓을 해왔다。
이제 용건은 끝났다。
일어서서 방을 뒤로하는 우리의 등 뒤로、이성을 잃은 짐승같은 포효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지독한 하루였다。
복도를 걸으며 생각한다。
모처럼 마을에 와서 맛있는걸 잔뜩 먹고、기분좋게 귀가할 뿐이였는데。
알고싶지 않은 사실을 억지로 알게되고、보고싶지 않은 노파의 추태를 보게되고。
쌓아둔 플러스가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총평하자면、지독한 하루였다。
누구도 말 한마디 없이、장신의 여성을 뒤따라 현관 입구까지 돌아왔다。
어서 돌아가려고 앞을 향하자、담뱃대를 물고있는 카오리씨가 연기를 내뿜으며 앉아있다。
「무얼 빨고 있는가。약인가」
「네」
아직 조금 여유가 남아있는 어머니가 묻는다。
카오리씨는 연기를 뿜으며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나쁜 물건은 아닙니다。
보셨던대로 몸이 안좋기 때문에、이렇게 약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카오리씨는 품에서 푸른 풀을 꺼냈다。
약초인 것 같은데、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근처에서 자라는 잡초라고 말해도 판별할 방법이 없다。
「이걸로 통증이 완화됩니다。머리가 멍해지지만、익숙해지면 별거 없습니다。
선물로 하나 어떤가요」
「……몸이 약한 이유는 뭔가。천성인가」
내밀어진 푸른 풀을 무시하고、어머니는 한 걸음 다가갔다。
스스로 관여하는 것은 드물다。방금 전 그런 일이 있어서、피로에 의해 정상적인 판단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힐끗 살피던 카오리씨는、담뱃대를 크게 들이마시고、천장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전 영주는、여러가지 일을 해왔습니다」
담담한 말투에、무거운 이야기가 온다는 것을 눈치채버렸다。그만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들어야만 한다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납치해온 아이에게 이상한 약을 먹여 괴로워 하는 모습을 즐기거나、아이끼리 죽이게 해서 구경거리로 삼거나、
부모에게 아이를 죽이게 하여 미치게 만들거나、정말 여러가지를 일을 해왔습니다。
저 같은 경우、성장을 저해하는 약을 마시게 됐습니다。그 결과는 보시는대로」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고싶지도 않았다。역시 듣지 않을걸 그랬다。귀를 막았어야 했다。
「한 가지 질문에 대답했으니、부탁 한 가지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내용에 따르겠지만、최대한 들어주지」
카오리씨는 일어서서、나에게 다가온다。
그만큼 카오리씨를 경계하던 여동생은、지칠대로 지쳐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나의 왼팔에 매달리듯 서있는게 한계인 것 같다。
그런 여동생을 걱정하는 틈을 노린듯、카오리씨는 어머니를 지나쳐、나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아주 살짝 굽히기만 하면、우리의 시선은 같아진다。
「얼굴 보여줄래?」
「……」
그게 부탁인가。
정면에서 향해진 눈동자에는 어두운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어둠이 전부 나에게 향해져 있어서、서서히 갉아 먹히는 것을 느꼈다。
이미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았다。될대로 되라며 후드를 벗었다。
「……」
「……」
시선이 얽힌다。
카오리씨가 눈앞에 있는걸 이제와서 눈치챈 아키가、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떨어뜨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한 발 앞서서 내 머리에 손이 놓여지며 그대로 천천히 쓰다듬어진다。
「굳은 피의 색」
내 머리카락의 색이다。
굳은 피의 색。어머니와 아키는 검은색、아버지는 감색이다。
아마도 격세유전일거라 생각하지만、컬러풀한 머리색이 일반적인 서쪽에서도 이 색은 드물다는 것 같다。
동쪽은 검은색 뿐이라、어딜가도 눈에 띄는 색이다。
「눈동자는 검정、콧대는 조금 높네? 하지만 그 외에는 동쪽의 특징인가……」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눈꼬리를 지나 뺨을 쓰다듬는다。
턱 끝을 부드러운 손길로 만져지는 것은、무척 간지러웠다。
「저기。살아가는게 괴롭지 않아?」
「하……?」
「죽고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어머니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인지、작은 목소리로 그런걸 물어온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검지 손가락으로 아랫 입술이 쓰다듬어졌다。
무심코 입을 벌린 순간에 손가락이 침범해왔다。
손가락 끝으로 몇 번이나 혀를 쓰다듬으며、구역질을 자아냈다。
「……뭔가요」
「앞으로、너에게는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을거야。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
엉뚱한 발언에는 익숙해져있다。
동요하지 않고 가만히 시선을 맞추고 있자、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아키에게 팔을 당겨지거나、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이대로 유혹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고혹적인 사람이었다。
「응? 어때?」
무엇에 초대를 하고있는가、다시금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 해봐도、역시 그런가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의 목적은 무엇인가。지금까지의 언행을 돌아보면、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오라버니、그만두세요……가지마……」
옆에서 아키의 호소가 들려왔다。
매달리는 힘이 매우 약하다。그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따뜻했다。
오늘 하루동안 이 작은 몸에 얼만큼의 부담을 준걸까。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을 알게되고、보고싶지 않은 것을 보게됐다。
마을에 오지 않을걸 그랬다。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적어도 이 자리만큼은 어서 안심시켜주자。
그 한 마음으로 말을 자아낸다。
「당신은 가까운 시일에 죽는군요」
너무 직설적이었나 내뱉은 후에 생각했다。
좀 더 돌려말할 수 있지 않았나 후회한다。하지만 앞서가는 후회는 후회가 아니다。
이때의 나는 그런 말을 했다。사실로서 남는 것은 그거 뿐이다。
「응」
기분이 상한 기색도、침울해진 기색도 없이、카오리씨는 담담하게 끄덕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그래서 말야 함께 죽어줄 사람을 찾고있어」
「그렇게 죽고싶은 건가요?」
「죽고싶지 않아。그래도 죽어。혼자서 죽는건 외로우니까」
「어째서 저를 유혹하는 건가요。저는 죽고싶지 않습니다」
「정말로?」
말하지 않고、고개만 끄덕였다。카오리씨에게 시선을 돌린 채로。
그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이유는 하나 더 있어」
장난스럽게 웃으며、음성에도 장난기가 담겨있다。
「뭔가요」
「너의 머리색」
꾸욱꾸욱 난폭하게 머리를 쓰다듬는다。아플정도의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이게 이 사람의 최대한이라고 생각하니 공연히 슬퍼졌다。
「여자 아이는 피에 인연이 있지만、나는 그렇지 않아。
그런데 너는 머리색부터 집안까지、피에 인연이 깊어서 질투했어。남자 주제에 라고 말야」
「……」
「정말로 죽고싶지 않아?」
「……네」
「그래。그럼 안 되겠네」
숙였던 허리를 피며、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어머니 쪽으로 돌아섰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였어도、어머니에게 지금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을리 없다。
그렇지만、무엇하나 참견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던 그 심경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괜한 참견일지도 모르지만、여기서 더욱 동쪽으로 가는 것은 피하는게 무난하겠죠。
특히、렌군을 데려가면 괜한 소동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언가 있었나?」
「방금 전에 보고가 있었습니다。동쪽의 마을에서、서쪽의 인간이 참살당했다고 합니다。
양팔과 다리가 절단되고、입안에는 손가락이 가득 들어있었다든가」
「너희들의 짓인가?」
「그렇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싶지만、할멈의 광기는 보셨던 대로」
그 순간、복도 안쪽에서 짐승같은 포효가 들려온 것 같아、무심코 돌아봤다。
그건 기분 탓이었는지、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기분 나쁜 기색은 여전히 감돌고 있다。
「동쪽은 마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자경단이든 뭐든 관계없이、독이 돌고있기 때문에」
말하면서 손가락을 굽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 의문을 품고、계속 듣는다。
「돌아가는 길에 조심하세요。저희는 일치단결이 아닙니다」
「알았다」
「이제 두 번 다시 뵐 일은 없겠지만、건성을 기원합니다」
「아아。너도」
카오리씨는 미소지었다。어머니는 무표정이었다。
작별인사는 그것 뿐이었다。
드물게도、어머니가 내 오른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걸음이 빨라서、꽤나 빠르게 걸어야 했다。
여전히 왼팔에 매달려있는 아키를 두고 가지 않도록 고심한다。
「안녕히」
그 목소리에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일순간 돌아보는 것이 한계였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이 눈동자에 새겨진다。
태어나서 첫 관광은、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