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잠깐 가랑비가 내리고 그친 후、눈부신 창천이 펼쳐진다。
햇살은 따뜻하며、바람은 여름의 도래를 연상시키는 편안함。
상큼한 새 지저귐과 가슴에 가득 퍼지는 신록의 냄새。
녹은 눈이 강에 흐르고、차가운 물과 강물소리에 청량감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봄볕을 가득 받으며、새 지저귐과 강물소리를 같이 들을 수 있는 장소에 나는 서있다。
좋은 장소에 서있다는 자각은 없었다。머릿속은 그럴 때가 아니다。
시선의 끝에는 여러 아이들。기운차게 첨벙이고 있다。
봄을 만끽할 여유가 없는 것은、저 아이들 덕분이다。
이 계절에 아이들은 강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녹은 눈에 의해 물이 불어나 있어서、어른조차 위험할 때가 있다。
하지만 금지하면 반대로 하고싶어지는게 사람의 본성이다。
어린애라는 욕망의 덩어리라면 더욱。행동력 넘치는 호기심 왕성한 아이들만큼 속썩이는 것은 없다。
어른들이 한눈판 사이、강에서 물놀이에 빠지는건、연례행사다。
그리고、그런 아이들을 풀숲에 숨어서 지켜보는 나는 완전 변질자였다。
이전 세계였다면 신고당했을거다。그정도 자각은 있다。
지금 내 시야에 있는 아이들은、언젠가 말을 멀리서 바라보던 아이들이다。
남자 하나에 여자 넷。여전히 밸런스가 안 좋다。
아이들은 그밖에도 많이 있지만、저 다섯명은 소꿉친구 관계인 것 같다。
볼때마다 항상 이 다섯이명이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지긋지긋한 관계。부러운 인연이다。부디 내 여동생도 끼워줬으면 좋겠다。
연상이고 리더같은 존재로 어떠십니까。
한심한 소망을 혼자 쌓고있는 나같은건 무시하고、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강가에서 물놀이 중이다。
꺄륵꺄륵 서로 물을 뿌리는 모습은 그저 흐뭇하다。
물놀이에 만족하고、아무 일도 없이 돌아가주면 다행이었겠지만、안타깝게도 옷을 벗는 아이가 나타났다。
이제 흐름대로 전원 옷을 벗고、헤엄치기 시작하겠지。
얕은 곳에서 놀 뿐이라면 봐주려 했지만、헤엄칠만큼 깊은 곳에서 논다면 놔둘 수 없다。
이 시기、돌발홍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있고나서는 늦다。자연의 맹위를 막는건 불가능하다。
이렇게되면、주의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스윽 그 자리에서 일어나、일부러 발소리를 울리며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조금 걷는 사이에 한 명과 시선이 맞았다。남자아이다。「아」라는 얼굴로 나를 발견한다。
그걸 계기로 다들 시선을 돌린다。시간이 딱 멈춘 것 같았다。
무표정을 유지한다。허리의 검을 과시한다。
말없이、성큼성큼、살짝 빨른 걸음으로 아이들에게 접근。
그러자 아이들의 안색이 서서히 파래진다。이미 주저앉은 아이도 있다。
결정타로 어깨를 들썩이는 난폭한 걸음。화난 느낌으로。
그렇게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여자애들은 「꺄ー악」 남자애는 「와ー악」
엄청난 성량으로 메아리를 만들었다。
해놓고 뭐하지만、벗어둔 옷을 잊어버릴 정도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넘어져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말로서、한 사람만 그자리에 멀뚱히 남겨졌다。
수난에 빠진 아이들이 없었으니、최고의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잊고간 옷들을 회수했다。나중에 어머니 경유로 돌려주자。
그런 느낌으로、올해의 봄은 아이들의 비명과 함께 찾아왔다。
봄은 만남과 이별의 계절이라 말하지만、이 세계에 의무교육은 없고、학교도 없다。
만남이든 이별이든、그런 기회가 없다。
나 같은 시골사람에게 봄은、모내기의 계절。그리고 사냥의 계절이다。
「내일은 산에 사냥하러 간다」
짧고 소중한 봄밤。
하지만 달빛조차 없는 밤에는 자연을 즐기는 것도 어렵다。
조용한 밤을 감수하고、저녁 식사를 끝낸 여동생이 잠들었을 때。
자기전에 얘기할게 있다며 어머니에게 불려、거실에 가보니 서론도 없이 그렇게 고해진다。
뜬금없는 발언에도、이 10년간 완전히 익숙해졌다。
「이 시기에 사냥이라면、개인가요?」
「그렇다」
이 마을의 서쪽방향에는 산맥이 솟아있다。
그곳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있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토끼나 다람쥐도 있지만、전혀 기억에없는 생물도 잔뜩 있다。
습성이나 특징도 종에따라 변화해 있으며、전생에는 동면하지 않은 생물이 이 세계에서는 동면한다。
「겨울을 끝으로、번식기에 접어들었다。지금 사냥하지 않으면 또 늘어난다」
「그렇죠」
짐승의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산의 동식물을 먹어치운다。
먹을 것이 없어지면 인가에 내려와、가축을 잡아먹고 사람을 덮친다。
특히 지금 언급한 개들의 번식력은 범상치않다。
한 번의 출산으로 4~5마리를 낳는다。그걸 번식기에는 한 달에 한 번의 페이스로 반복한다。
쥐와 맞먹는 속도로 늘어난다。내버려두면 터무니없는 일이 된다。
멸종시킬 생각은 없지만、어느정도 수를 줄여두는건 필요한 작업이다。
「평소대로 겐과 함께 가지만、이번에는 너도 와라」
「괜찮으신가요?」
「상관없다。겐이 불평을 늘어놓겠지만、네가 발목 잡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발목을 잡지 않는것과、도움 되는 것은 별개겠죠」
「처음 사냥하는 인간에게、그만큼 기대하지 않는다。그저 따라와라」
「알겠습니다」
방의 한가운데、화로의 불이 탁탁 소리를 울린다。
겨울은 끝났지만、아침저녁의 추위는 여전히 굉장하다。
겨울동안은 몸을 덥힐 목적으로 여동생과 같은 이불을 덮는게 일과였는데、그게 이어질 정도로 춥다。
「덧붙여서、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계신가요」
「반대 했지만、승낙시켰다」
「강제로 끄덕이게 했겠지요。그래서 이 자리에 안계신거군요。지금은 어디에?」
「토라져 자고있다。아버지의 일은 너무 신경쓰지 마라。내가 어떻게든 한다」
뭔가 상상력이 부풀어 오르는 말투다。
이건 혹시、기대해도 되는건가。
봄이고。번식기고。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그런거겠지。
「……천박한 이야기라 송구스럽지만、저는 동생이 한 명 더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천박한 이야기군。갑자기 뭔가。그 지식은 어디서 얻었나」
「아직 어머니도 아버지도 젊지요。만들 생각이면 만들 수 있을겁니다」
「나는 곧 30이다。지금 아이를 만드는건 장래를 위해 이득이 안된다」
「손익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겠죠。태어날 아이가 가여워」
「결정된 것처럼 말하지 마라。나는 검성이다。임신하면 둔해진다。언제 살해당할지 몰라」
「호위와 만일의 복수는 맡겨주세요」
「아키에게 기대한다。너는 어서 사위로 가라」
나도 이제 11살이다。
성인은 15살。15가 되어도 결혼하지 못했다면 늦어졌다고 말한다。
결혼하려면 상대를 찾아야한다。이제 시간은 얼마 없다。결단의 순간이 다가온다。
「어머니。솔직히 말씀드리면、저는 결혼 못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냐。이유는?」
「만남이 없습니다」
「……마을 여자들은」
「피하고 있습니다。이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돌아보니、아기때부터 터무니없는 언행을 펼쳤다。
제일 위험했던건、동면에 실패하여 마을을 습격한 빌어먹을 원숭이 무리에 혼자 돌격한 일이겠지。
이 시기가 되면 여전히 화젯거리다。
부모세대는 그날부터 나를 완전히 기피하게 되었다。자녀세대에도 그 감정이 전해지고 있다。
이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알았다。어떻게든 하지」
「어머니。마음은 기쁘지만、섣불리 일을 벌이는건 그만둬주세요。이런건 서로의 기분이 가장 중요한――――」
「말할 필요 없다。안심해라。어미에게 맡겨라」
「안심할 수 없으니까 말씀드리는겁니다」
이걸로 마을 여자들을 모아놓고 대규모 맞선이라도 벌인다면、나는 마을에 있을 수 없다。
너무 부끄러워。
그런 쓸데없는 일로 결단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자유연애라면 부모는 너무 간섭하지 않고、한걸음 뒤에서 지켜보는게 딱 좋지 않을까하고」
「자녀의 결혼상대를 찾는 것도、부모의 역할중 하나다。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자유연애를 권장하는게 아니었나요」
「물론 그렇다。그렇기에 나는 만남의 장을 만들 뿐이다。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어머니……」
마을 전체를 끌어들인 대규모 맞선이 현실성을 띄기 시작했다。
여느때보다 더욱 주시 해야겠다。약간의 징조만 보여도 곧바로 막아야한다。
「내일은 일찍 떠난다。이제 자라」
「아무쪼록 부탁드리지만、관계없는 분들에게 민폐끼치는 일은 없도록 해주세요」
「알았다 알았어」
어머니는 지긋지긋하다는 말투로 침실에 향한다。
아버지의 기분 풀기도 겸하고 있을거다。어떤 방법으로 풀어줄건지 맡겨둬야겠지。
거실에 홀로 남겨진 나는 화로의 뒷정리를 한다。
불을 끄니 집은 어둠에 휩싸이고、눈꺼풀 뒤에 흐릿한 빛이 남았다。
어서 자자。내일은 바쁘니까。
다음날 아침。
평소대로의 시간에 일어났다。해는 뜨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몸을 조금 움직이니 가슴팍에서 잠꼬대 소리가 들려、단숨에 졸음이 달아났다。
「오라버니……」
이불속에서 여동생이 달라붙어 있다。
온기를 찾아 꽉 껴안고 있었다。
아무리 여동생이 한 번 자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도、난폭하게 떼어내면 일어날 것이다。
깨우지 않도록、신중하게 떼어내고、살며시 방을 나선다。
집안이 희미하게 밝다。
떼어놓는데 시간을 잡아먹어、이미 아침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거실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불을 피우고 있었다。화로 한 가운데서 냄비가 끓고 있다。
「안녕하세요」
「아아」
간결하게 대답하면서、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씻고와라。이걸먹고 떠난다」
「무얼 만들고 계신건가요?」
「죽이다」
「말씀해주셨으면 일찍 일어나서 만들었을텐데」
「아이는 자고 있어라」
「지금부터 자도 괜찮겠습니까?」
「어서 씻고와라」
어머니에게 농담은 통하지 않는다。
무슨 바보같은 소리냐며 바보를 보는듯한 눈으로 바라볼게 뻔하다。
농담이 안먹힌 부끄러움을 가슴에 품고、집 뒷쪽의 우물에서 얼굴을 씻었다。
우물물 자체는 별로 차갑지 않았지만、바람이 불어온 시점에서、한기가 전신을 덮쳤다。
거실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그릇에 죽을 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머니의 수제요리는 처음이다。일단 한 입。
「소금맛……」
「맛없는가」
「맛있지도 맛없지도」
「그런가。……그렇군」
어머니도 똑같은 감상인것 같다。
둘이서 말없이 먹기 시작하고、나는 어머니보다 살짝 늦게 다 먹었다。
그릇을 두는 것과 동시에、어머니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걸 챙겨라」
은색의 작은 구체。끈이 묶여 있다。
「방울인가요」
「헤매지 않도록 조심해라」
전생에서도 산을 오를때 곰피하기 방울은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사냥하러 가는데、소리나는 물건을 가져가도 괜찮은걸까。
「이걸 딸랑딸랑 울리며 걸으면 사냥감이 도망가지 않을까요」
「반대다。녀석들은 오히려 다가온다」
「그 개들에게 무서운 것은 없다고」
「번식기라 흉폭해져있다。배도 곪고있지。인간은 딱 좋은 먹이다」
「여우늑대는 먹을 수 있습니까。먹을 수 있다면 조금 가져오고 싶습니다만 」
「별로 먹지 않지만、모피는 쓸 수 있을거다。겐에게 물어도록 하지」
장비를 확인한다。
검과 물통。그리고 어머니는 만든 볼품없는 주먹밥。
「이것뿐입니까」
「밤까지는 돌아온다。이 이상은 필요없다」
등산이라 하면、만일을 위해 비상식량을 가져가는게 상식이지만、어머니는 조난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매년 개 사냥을 하고있고、나처럼 지식뿐인 사람보다 경험이 풍부하다。
겐씨도 있고、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가자」라는 어머니의 호령에 밖으로 나왔다。춥다。
산에 오르면 더욱 춥겠지。
어머니는 자주입는 외투차림。검은색 바탕에、빨간색 라인이 들어가 있다。따듯해 보이지만、움직이기 불편해보인다。
나도 비슷한 외투를 입고 있다。모자지간의 페어룩이다。남이 본다면 필시 흐뭇할 것이다。
문을 열자 바로 눈앞에 겐씨가 서 있었다。
직전까지 불을 쬐고있던 우리와 달리、겐씨는 우리집 마당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깨에 활과 화살을 메고、계속 손을 비비고 있다。
정말 눈앞에 있어서、조금 놀랐다。
「늦어」
「미안」
기다리게한 불평은 한마디 뿐이었다。간결한 사과에 콧방귀를 뀐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며、한층 더 불쾌한듯 얼굴을 찡그렸다。
「진심으로 이런 꼬마를 데려갈거냐。너 제정신이냐?」
「좋은 경험이 될거다」
「남자 따위에게 경험을 쌓게하면 뭐가 되는데。이왕이면 딸 쪽을 데려와。그쪽이 차라리 납득할 수 있어」
「아케에게는 아직 이르다」
「저기 말야、부모의 욕심이잖아。나기。이런짓 해도 소용없어。너도 잘 알잖아」
「……그렇지」
어머니가 곁눈질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이미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너희 집안은 고집쟁이뿐이다。어떻게 되어도 모른다。발목 잡는다면 버릴거니까」
「걱정마라。그것만큼은 없다」
「그게 부모의 욕심이라고」
언짢음을 몸에 두르고、잽싸게 혼자 걸어가는 겐씨를 우리도 뒤따라간다。
겐씨 못지않게、어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제대로 앞을 보고 걷는걸까。
「아버지와 아직도 싸우는 중인가요?」
「……아아」
「예쁜 꽃이라도 꺾어갈까요」
「……그렇군。그렇게 하자」
눈앞에 우뚝 솟은 산。
얼핏 가까워 보이지만、상당히 걸어야할거다。
밤까지는 돌아간다 했는데、과연 어떻게 될런지。
산에서 하룻밤 지내게 되면、절체절명의 위기라 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
어둠 속에서 수많은 짐승에게 포위 당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기운이 빠진다 。
그것만큼은 피하기 위해 머리속에서 대책을 강구해본다。
하지만 지식뿐인 머리로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골머리를 앓는중、허리춤에 달아둔 방울이 딸랑하고 울렸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 한 가지 떠올린다。
이걸 이용하여 잔뜩 모으면、그만큼 사냥도 빨리 끝나겠지。
뭣하면 피냄새를 흘려서 끌어내면 된다。다른 짐승도 몰려오겠지만、어머니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거다。
일단은 그렇게 가보자。
노숙만 피할 수 있으면、솔직히 다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의지하는 마음을 담아、방울을 흔든다。
딸랑하고 시원한 음색이 대답하듯 울려퍼졌다。